이제는 인정해야겠다. 입버릇처럼 말해왔고 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지역사회의 확진자 증가 추세가 만만치 않다.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최초 확진자와 그의 친구 이후로 더 이상의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다. 반면 이웃 고등학교는 오늘 1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검사가 이루어졌다. 저녁이나 내일 아침이면 결과가 나올 것이다. 검사를 받으러 온 학생들을 취재하려는 방송사들의 차량이 학교 앞을 메웠다고 하니 오늘 저녁 뉴스는 챙겨봐야겠다. 대형교회 발 확진자도 속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서 우리 동네는 코로나 19 발생 후 가장 심각한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제발 추가 확진자 발생 없이 지나가기를...
동네는 조용하고 카톡방과 지역 카페는 시끄럽다. 모두 심각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대부분의 학원들이 일주일 휴원에 들어갔고 고등학교는 발 빠르게 전환했던 온라인 클래스를 내일 마감하며 짧은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 집엔 다시 작은 아이와 나만의 시계가 흘러가고 있다.
올해 초부터 줄곧 그래 왔다. 남편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니 가족 중 확진자가 나오지 않는 이상 출근을 해야 했다. 큰 아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알바를 했고 5월부터는 재수학원과 체대 입시학원을 오갔으니 잠잘 때만 볼 수 있었다. 자연스레 작은아이와 둘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둘이 아침을 먹고 각자의 일을 한다. 주로 아이는 온라인 클래스를 듣고 나는 식탁에 앉아 글을 쓴다. 12시 반쯤 아이가 쓱 나오면 배고프다는 신호다. 기계적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더딘 시간을 지나 저녁을 맞이한다. 나도 교습소에 수업이 있고 아이도 학원을 가는 날에는 잠깐의 외출을 했지만 그게 다였다. 특히 아이는 온전히 집과 한 몸이 되어버렸다. 집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일부러 바이러스를 퍼트린 게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 둘은 최소한의 외출만을 하며 자발적 고립, 격리를 하고 살았다.
집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아이처럼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남편을 비롯한 누군가가 물어볼 때마다 당당하게 말했다.
"전 집에 있는 거 좋아해요~ 누굴 만나거나 돌아다니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더 이상 집에서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다. 한동안 열심히 집을 정리하고 미친 듯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지만 돌이켜보니 '집에 있으니 참~~ 좋다'라며 흥이 났던 건 아니었다. 그냥 집에 있는 동안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움직인 것일 뿐.
그런데 이젠 집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아무 일 하지 않으면 몸은 더 피곤해진다. 50분 움직이면 미친 듯이 졸려서 10분을 자야 하는 지독히 규칙적인 피로를 경험하는 중이다.
집은 사람에게 최대한의 휴식과 안정감을 주는 장소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피곤이 몰려오는 걸까? 아니면 집에서 더이상 효용가치가 없다고 느끼는데서 오는 무력감은 아닐까?
지금껏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한 것은, 집에서 뒹굴거리는 내가 아닌, 집에서도 종종거리고 다니며 무언가를 계속하는 나를 상정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식구들 입에 넣을 무언가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강의 준비를 하고 틈틈이 책을 읽고 실내 자전거를 타며 일분일초를 열심히 이용하던 나 말이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외출과 강의에 제약받는 상황이 반복, 장기화되니 탄력을 잃고 무력해진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되니 집은 벗어나고 싶은 곳이 되었다. 벗어나지 못하니 죽을 맛이다.
이제는 인정한다. 난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집에서도 열심히 사는 '나' 자신을 보는 게 좋았던 것이다.
그런데... '꼭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며... 10분 동안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