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Jul 22. 2020

작가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벌떡 일어나 마른빨래를 걷어 갰다. 냉동실에서 잔멸치를 꺼내 볶아댔다. 더러워진 운동화를 벅벅 빨았다. 화장대 서랍 하나를 뒤집어 정리를 했고 샤워를 하다 말고 때수건을 들어 구석구석 문질렀다. 그렇게 하니 마음이 좀 진정됐다. 받았던 상을 뺏긴 것도 아니건만 왜 그리 섭섭했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가 한식> 공모전의 발표를 앞둔 몇 주동안 설레는 기분이 한가득이었다. 순위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명단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 데는 몇 가지 근거가 있었다.

일단, 몇몇 글들이 조회수 수만을 기록하며 며칠씩 다음 메인에 걸린 경험 때문이다. 뜬금없는 조회수 폭주에 원인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다음 홈앤 쿠킹 코너에 내 글과 사진이 실린 것이 여러 번. 남편은 다음 화면을 무한 새로고침해 기어이 내 글을 찾아내곤 했다. '그렇게 메인에 오를만한 글이었나?'라며 내심 겸손스러운 흐뭇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고는 했으니 수상을 기대할만하지 않았겠는가.

글을 읽은 가족들의 반응이 뜨거웠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였다. 아버지의 보쌈김치, 큰 이모님의 계란찜 등을 읽은 가족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희미한 기억을 글로 구체화시킨 나에게 고마워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공모전 주최 측의 잦은 연락은 날 힘껏 들뜨게 했다. 글에 쓰인 사진 파일을 따로 보내달라는 메일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당선작 발표를 일주일 앞두고는 제출한 글에 첨부된 사진들 중 저작권에 걸릴만한, 내가 직접 찍지 않은 사진이 무엇이냐는 메일도 보내왔다. 나는 확신했다. 뽑혔구나! 최종 점검을 하나 보구나. 어떤 글일까?


기대가 확신으로 바뀌었던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아무도 모르게 꿈길을 걸었다.

당선이 된다면, 토론을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글 좀 쓴다는 작가'가 너희들 선생님임을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겠구나. 글쓰기 특강을 열어 당선작을 낭독해보아도 좋겠군.

당선이 된다면, "넌 언제 등단하냐?"며 물어보시는, 내심 피트니스센터 할머니들에게 한턱 쏘고 싶어 하시는 시어머니의 플렉스를 채워드릴 수도 있겠구나.

당선이 된다면, 그래서 얼마의 상금도 주어진다면 잘 키워주신 아버지 어머니에게 용돈이라도 좀 드려야지.

당선이 된다면, 삶에 재미가 없다는 남편에게 찰나의 기쁨을 줄 수도 있겠구나.

당선이 된다면, 어느 출판사에선가 나에게 책을 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할지도 모르겠다.

당선이 된다면... 당선이 된다면...

누군가에게 발설하면 터지기라도 할까 봐 혼자서 조용히 그려가고 있던 부푼 꿈들이었다.


그런데 명단에 없다니... 참 야무지고 요망한 꿈을 꾼 게 아닐 수 없다. 조회수가 많다고, 다음 메인에 걸렸다고 모두 좋은 글 일리 있겠는가. 가족들이야 당신들의 추억을 소환하는 글이니 감동했을 것이다. 주최 측의 확인 메일들은 절차상 필요한 것이었을 수 있다. 모든 정황을 당선과 연관 지어 생각하다니. 거창한 시상식에서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왕관을 쓰고 청중을 향해 손을 우아하게 흔들며 "나 대상 수상자 송유정은, 인류의 평화를 위해 봉사할 것을 다짐하며..."라는 상상까지 안 간 게 다행이다.


탈락의 쓴맛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외마디.

'글감이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채 일 년도 안되었건만, 직업이 작가도 아니건만, 눈에 보이는 온갖 것들, 귀에 들리는 사방의 소음들이 소재로 둔갑한다. 아니 반대로, 눈은 초롱, 귀는 쫑긋 세운 미어캣처럼 글감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렇게 매일 찾아 헤매는 글감인데 오늘은 이렇게 내 앞에 떡하니 나타나다니 탈락은 어쩌면 공모전 주최 측의 배려였는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노트북을 열고 브런치에 로그인을 한다.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써 내려간다. 그러다가 다시 상상에 빠진다. 이 글이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 당선이 되고 출판 제안이 들어오고 그 책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또...

단순하고 무식하게 장밋빛 상상을 하며 쓰고 또 쓴다. '상상의 양만큼 글이 쌓이다 보면 한 조각의 상상이라도 현실이 될 그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즐거운 상상에 다시 빠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끼리 퇴임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