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받은 편지는 고모에게서 온 편지일 듯싶다.
모아둔 기록물들을 다시 뒤적이다 보니 고모에게 받은 편지가 파일 맨 앞쪽에 끼워져 있으니 말이다.
수원에서 보건전문대를 졸업해 원주에 있는 의료원으로 직장을 얻은 고모는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사는 외로움을 조카들에게 보내는, 특히 나에게 보내는 편지에 절절히 실어 보냈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보았던 재미있는 동화나 좋은 글들을 오려 함께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보고 싶은 유정, 유미에게!
편지를 쓸 때면 유정, 유미가 더욱더 보고 싶어 진다.
학교 잘 다니고 부모님 말 잘 듣는 착한 조카들이길 고모는 늘 기원한단다.
여기 동화 두 편을 보내니 함께 사이좋게 읽어보고, 유미에게 잘 설명해주렴.
유정이는 언니 노릇을 잘해서 고모는 너무나도 대견스럽게 생각된단다.
그리고 엄마, 아빠께 고모가 지난 26일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했다고 전해주렴.
(학과 시험은 100점으로 100명 중 1등 했다고)
유정아 유미야, 다음에는 코 안 다치도록 고모가 차를 잘 운전할 수 있을 거야! 기대해보렴.
유정, 유미야. 이 밤 좋은 꿈 꾸고 다음에 또 만나자.
86.9.28 원주 고모 씀.
고모는 '돈이 많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일들'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83년도에는 피아노를 사주었고, 대학에 입학하던 95년에는 컴퓨터를 사주었다. 늘 고가의 굵직한 물건들을 보면 첫 조카인 날 생각하며 마련해 주었던 거다. 방학마다 원주에 놀러 가면 휴가를 내가며 치악산에 데려가 주었고 맛있게 먹었던 음식점을 기억해두었다가 꼭 맛 보여주었다. 결혼 후 임신을 한 부른 배를 하고서도 나와 동생이 원주에 안 가면 속상해했다. 야간 교대가 있는 병원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쪼갠 스케줄 사이로 나를 초대해 주었던 고모. 당신의 아이를 키우면서도 명절 때나 가족 모임 때 나만 보면 다른 방으로 몰래 불러 선물에 봉투에 바리바리 챙겨주던 고모.
내 살림을 차리고 내 자식을 키워보니 이제야 알겠다. 내 식구 아닌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챙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내 자식 외에 남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계속 표현하는 것에는 얼마나 큰 수고가 들어가는지를...
어린 나이에 아버지, 어머니를 여의고 중학교 때부터 큰오빠 내외랑 살면서 늘 애정에 목말랐던 고모는 입버릇처럼 "가족이 그립다"를 달고 살았다. 그렇게 정에 굶주렸는데 20대부터 혼자 떨어져 살았으니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집착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끔 만나는 자리에서는 옆사람이 지칠 정도로 많은 말들을 쏟아냈고 조금이라도 듣는 이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으면 팔을 툭툭 치면서 계속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옆에 앉기가 점점 꺼려졌다. 가족 중 누군가 조금이라도 섭섭한 얘기를 할라치면 이 사람 저 사람을 붙잡고 울며 하소연을 하는 통에 다들 조금씩 피곤해하기도 했다.
고모도 나이가 들어 두 손녀의 할머니가 되었다. 여전히 나를 보면 반가워하고, "우리 예쁜 유정이~"라며 생글생글 웃어주신다. 고모가 원하는 건 딱 하나다. 내가 식구들과 원주 고모댁에서 하룻밤 자고 가는 것. 그 간단하고 쉬운 걸 못하고 산다.
밤새 내 팔을 툭툭 치면서 했던 말 또 하면서 들어주고 호응해주길 원하는 걸 상상하며 늘 거절을 했다. 비겁하고 이기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녀가 가졌던 그 깊은 외로움을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조카인 내가 조금은 쓰다듬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귀에 딱지 좀 생기면 어떠리... 한쪽 팔뚝이 벌겋게 부어오르면 좀 어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