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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10. 2019

D-100 프로젝트
< D-80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집 앞에 새로 생긴 식당 한번 가볼까?"

남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좋아!" 했다. 밥 차리는 게 두렵고 힘든 일은 아니지만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기 때문...


'윤 식당'이라며 TV 예능 프로그램 이름을 호기롭게 걸어놓은 작은 가게에는 노부부 두 분만이 일하고 계셨다. 간판에 걸린 그림의 주인공인듯한 아주머니가 음식을 만드시고 남편인듯한 아저씨께서 서빙을 하고 계셨다. 아저씨는 몸이 불편한 듯 절룩거리셔서 아주머니 혼자 주방과 홀을 왔다 갔다 하며 종종거리셨다. 

각종 찌개류, 비빔밥 등을 팔고 술꾼들을 위한 '삼겹살+술국'을 비롯한 술안주 메뉴도 있었다. 간단히 저녁 한 끼를 해결하고 싶은 가족 손님이나 학생 손님들, 혼밥 손님들이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건강한 식자재와 청결한 마음으로 정성껏 만들겠습니다. -윤 식당 일동'

주방 들어가는 입구에 드리워진 발에 쓰여있는 '일동'이라는 말이 왠지 어색했다. 일동이라고 하기엔 사장 이하 직원이 너무 적었고 힘없이 느껴졌다. 


김광석의 노래 중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생각난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고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자식들 다 키우고 나면 둘이 손잡고 동네 산책하며 저녁은 적당히 밖에서 해결하는 삶을 그리는데, 그것 역시 쉽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남편 말처럼 죽기 전날까지 일하고 돈 벌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이 식당의 노부부처럼 서로 의지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모습은 감동스럽고 존경스럽다. 


친구들과 골프 치고 해외여행 다니며  자식들과 손주들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무 걱정 없는 여생만 주어지지는 않을 터이다.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는 삶이 더 현실적이고 가능한 미래일 테다. 하지만 그런 삶이라고 힘겹기만 하고 피하고 싶기만 할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삶이라도 즐겁게, 최선을 다하는 나와 남편의 모습이 그려진다. 우린 그럴 것이다.


오래전, 남편은 내 장례식에서 부를 노래를 준비했다고 했다. 

이문세의 <소녀>

내 곁에만 머물러요
떠나면 안 돼요
그리움 두고 머나먼 길
그대 무지개를 찾아올 순 없어요
노을 진 창가에 앉아
멀리 떠가는 구름을 보면
찾고 싶은 옛 생각들
하늘에 그려요
음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속에
그대 외로워 울지만
나항상 그대 곁에 머물겠어요
떠나지 않아요

그 이후로 이 노래만 들으면 목이 매이고 눈물이 난다. 

그러다가 화도 난다. 

"왜 내가 먼저 죽는대?"


나를 보내고 나보다 하루 더 살다 가겠다는 그 사람.

"여보, 안녕히 잘 계시오. 나 항상 그대 곁에 머물며 떠나지 않으리다."라는 노래 가사말 대신

"나 없는 세상도 즐겁게, 신나게 사시오~ 저승에서 아는 척하기 있기? 없기!" 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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