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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ug 22. 2020

일흔여섯 번째 시시콜콜

선생님이 너무 훈남이고 착해서 귀에 쏙쏙 들어오더라구요. 잘생겼어요. 27살이래.

예능프로그램을 함께 보던 우리 부부가 동시에 불편함을 느낀 대사였다. 웨이크보드를 타러 간 운동선수가 웨이크보드 세계챔피언에게 강습을 받으며 강사의 외모와 친절함에 반하는 장면이었다. 스튜디오에 있던 출연진들도 함께 호응해주며 아무 문제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는 이어졌다.

자막에는 "자상한 코치덕에 일취월장", "위험한 남자 도움 아래 장비 착용"등의 문구가 올라왔다. 심장을 공격할 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가져 위험하다는 의미였다. 불편함을 느낀 내가 오버스러운건가 싶었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면 답은 명료하다.


남자 출연자가 여성 강사를 향해 쏟아낸 말과 생각들이라고 치환해보자.

"선생님이 너무 예쁘고 착해서 귀에 쏙쏙 들어오더라구요. 예뻐요. 27살이래요."

"친절한 코치덕에 일취월장."

"위험한 여자 도움 아래 장비 착용."

만일 이런 상황이 그대로 방송을 탔다면 다음날 이슈가 되고 비난 댓글이 쇄도했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다음날 세상 조용했다. 어느 누구도 이슈화하지 않았다. 여성 강사를 실력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나이와 외모의 영향까지 거론하면 바로 문제가 되지만 남자 강사에 대해서는 똑같은 상황이라도 이슈가 되지 않았다. 이점이 나와 남편은 불편했다.


얼마 전 여자 아나운서가 유튜브 방송에서 중학생 남학생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던 장면이 문제가 된 적 있다. 누가 봐도 답이 뻔한 내용을 질문 형식으로 에둘러 표현한 아나운서의 발언이 성희롱 성격을 뗬다는 것이다. 해당 중학생이 문제 삼지는 않았지만 성희롱으로 여겼다면 '아동복지법 제71조 제1항 제1호의 2 및 제17조 제2호'에 따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처벌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상황 역시 남자 아나운서였다고 상황을 바꿔보자. 처벌은 둘째치고 바로 다음날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고 오랜 기간 자숙의 시간을 갖지 않았겠는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이름하에 여성에 대한 남자들의 성희롱, 성폭력은 늘 차별, 성평등의 문제와 함께 이슈가 된다. 여성차별의 오랜 역사와 함께 여전히 완전하게 동등한 대우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한계를 고려하면 여성들의 입장에서 사회는 아직도 기울어진 운동장이 맞다. 그런데 그 기울기를 맞추는 과정에서 여성들에게만 관대한 기준이 적용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여성들에 대한 차별은 용납하기 힘든 반면 그 과정에서 행해지는 남성들에 대한 차별은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다는 이율배반적인 태도 아닐는지...


같은 여자면서 여자에 대해 왜 그리 빡빡하게 구냐라던가, 여태껏 차별받아왔는데 그 정도도 못하냐라든가 하는 비논리적인 주장 역시 온당치 못하다. 차별의 뿌리를 뽑고자 한다면 과정 역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성희롱 발언을 한 남녀 출연자에게 똑같은 처벌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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