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O
국회 본회의장에 짧은 빨간색 원피스(분홍색으로 기사화됐으나 본인이 빨간색이라고 정정했다.)를 착용한 초선 여성 국회의원.
사실 이 논란이 불거지고 토론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자 위 문장의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고민거리였다. 한 문장에 걸려있는 함의와 쟁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국회 본회의장이면 안되고 의원 사무실이나 상임위는 괜찮은 건가?
짧은 원피스는 안되고 길면 괜찮나?
빨간색이어서 문제인가? 난데없는 색깔론?
초선이면 안되고 재선의원이면 허용 가능한가?
여성이라는 게 문제인가, 여성의 원피스가 문제인 건가?
남성의 복장에는 제한이 없나?
국회의원의 의복 규정이 따로 있는가?
실제 위와 관련한 기사의 댓글들을 보면 쟁점이 중구난방이다.
국회라는 장소에서 국민의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한 복장이다.
국회의원이 일만 잘하면 되지 옷이 무슨 상관이냐.
일을 못하니 옷으로 관심받고 싶은 거다.
국회도 직장이니 편안한 직장인 룩을 입은 게 무슨 문제냐.
국회의원을 일반 직장인과 같이 다룰 수는 없다.
짧은 원피스를 입고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성인지 감수성 떨어진다.
옷차림이 성폭력을 유발한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한편에서는 여성 국회의원들의 옹호와 지지가 이어졌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심각한 성희롱 댓글도 줄을 잇는 상황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는 이 상황을 하나의 기준으로만 보고 싶었다.
의복을 경우에 알맞게 착용하는 것.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따라 패션업계가 마케팅 세분화 전략에 의해 강조한 것.
마음 편하게 일상생활에서 약식으로 착용할 수 있는 간편한 옷차림의 캐주얼웨어와 사회인으로서 공식적인 자리에 맞게 착용하는 오피셜 웨어로 나눌 수 있다.
과연 저 복장이 TPO에 맞는 것인지의 여부만 따져보고자 한다.
Time.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연일 폭우가 이어지고 여기저기 물난리가 심각한 시기에 소풍 가는 것 같은 옷차림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국회가 상갓집인 것도 아닐뿐더러 일반 직장인의 일상적인 출근룩을 입었을 뿐이라는 반론이다.
Place.
국회는 국민을 대변하는 의원들이 입법을 수행하는 장소이므로 국민에 대한 격식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정장을 챙겨 입는 것이 관행이다.
이에, 꼰대스러운 발언이다, 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양복이나 번지르르하게 입고 있는 것보다는 일하기 편한 복장으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제대로 된 국회의원의 태도이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국회로 변모해야 한다는 주장.
Occasion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에 대한 진지함이 결여되어있다. 또한 복장이 이슈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충분히 했을 텐데 본회의장에 원피스를 입고 온 것은 관심만을 받고 싶어서가 아닌가.
이에, 국회의원의 권위가 복장에서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정장을 입거나 청바지를 입어도 지속적인 혐오발언이 있어왔던 것을 보면 일이 아닌 여성 국회의원의 복장을 문제 삼는 것이 비정상적인 상황 아니냐는 반론.
모든 이슈가 그렇듯 이 역시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때와 장소에 맞는 복장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다양성을 해치고 본질을 가리는 프레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럽다.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국회의원의 복장에 제한을 두는 것은 정당하다.>
< 여성 국회의원의 원피스 착용은 바람직하지 않다. >
* 등산복을 입고 전국으로 강의를 다니시던 지인이 생각난다. 격식 있는 자리에서는 양복을 입어주심이 어떠실지 넌지시 말씀드릴 때는 챙겨 입으셨지만 대부분의 경우 빨간색 바람막이를 즐겨 입으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옷차림에 과하게 신경 쓰는 세태를 꼬집으시기도 했다.
옷차림에 신경 쓸 시간에 내실 있는 강의를 준비하는 게 맞기는 하지만 갖추지 않은 옷차림은 좋지 않은 첫인상을 안겨준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반전을 노린 건가 싶다. 첫인상으로 한껏 내려버린 기대치에 반비례하는 멋진 강의로 이미지 반전을 극대화하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