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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ug 31. 2020

일흔아홉 번째 시시콜콜

<생활 편>

"내일은 늦잠 잘 수 있겠네?" 라며 좋아하던 남편은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수도권의 모든 학원은 일주일간 휴원 한다. 매일 이른 아침 큰아이의 재수학원 등원을 도맡았던 남편에게도 일주일 동안 약간의 게으름이 허용되는 셈인데, 그걸 또 못 견뎌했다. 

매일 나가던 시간보다도 30분 먼저 나간 남편이 한 시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서.


차가 없어졌다고 했다. 지하주차장을 세 바퀴나 돌아다니며 찾아봤지만 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헐레벌떡 관제실로 찾아가 CCTV를 돌려보며 차의 흔적을 좇았다. 시간을 거슬러 돌려보던 중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량을 발견했다. 토요일 이른 아침 아파트를 빠져나간 차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망연자실해진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다. 황당한 표정으로 어이없어하는 남편에게 위로의 한마디를 건넸다.

"그럴 수 있어. 누구나 그런 일은 생길 수 있어."


토요일 오전, 유유히 차를 끌고 나간 범인은 남편이었다. 회사 볼일을 마친 후 내 차에 동승해 본가에 가게 된 남편이 회사에 차를 두고 온 것을 잊었던 것.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깊은 망각이었다. 


얼마 전 내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통신사 TV 서비스 중 월정액 영화보기 첫 달 무료 행사가 있었다. 얍쌉하기는 하지만 한 달만 이용하고 다음 달 이용요금이 결제되기 전 해지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민만 하기를 며칠째, 어느 날 '월정액 영화보기를 신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왔다. 놀라움과 동시에 깊은 빡침... 가족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신청한 사람은 없었다. 

'아니, 고민만 했는데 이게 왜 신청이 된 거야? 이것들이... 누굴 호구로 알고...'

신청일을 확인해보니 첫 고민을 시작한 날이었다. 혹시나 싶어 휴대폰 캘린더를 확인해보았다. 정확히 한 달 뒤, 첫 결제일 전날에 이런 일정이 저장되어 있었다. 

" 영화 월정액 꼭 해지할 것."

범인은 나였다. 

고민만 한 게 아니라 실행도 했다. 그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애먼 범인만 찾아다녔다. 


친정어머니는, 최근 들어 부쩍 화장실 '큰'볼일을 보고 물 내리는 것을 잊으시는 친정아버지 때문에 걱정이시다. 치매 초기 증상이 아니냐는 것이다. 설마 엄마를 골탕 먹이려고 번번이 일부러 물을 안 내리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

실수라면 해프닝으로 끝나겠지만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걱정거리다. 

젊은 사람이건 나이 든 사람이건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실수인 건지, 확실히 검사하고 점검해볼 일인지...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실수를 반복하면 병이다. >

< 실수는 실수다. >


* 어제는 매일 몰던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배터리가 방전됐다면 문도 열리지 않고 라이트도 켜지지 않았을 텐데 시동만 안 걸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시동이 걸렸다. 지켜보던 남편과 친정어머니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 브레이크 안 밟고 시동 켠 거 아니야?"

어이가 없네. 운전경력 20년이다. 설마 브레이크 밟고 시동 켜는 것조차 모를까? 

그런데 확신이 안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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