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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22. 2020

여든네 번째 시시콜콜

<생활 편>

거의 한 달 반 만에 가져보는 고즈넉한 오전 시간이었다. 드디어 고등학교 등교가 시작된 것...

여유롭게 커피도 마시고, 빨래를 널다 말고 식물들에게 말도 걸어보았다. 아무것도 안한채 누워있기도 했고 글을 써볼까 노트북 앞에 앉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자리를 박찼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이 소중한 오전 시간을 이렇게 낭비할 수 없었다.


1시간 뒤, 난 광을 팔고 있었다.

오랜 지인들과의 만남이 두 달만, 고스톱은 그보다 더 된 것 같다. 정신없이 깔깔거리며 나를 내려놓는 시간...

학생, 학부모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나, 남편과 아이들 앞에서 잘난척하며 잔소리하는 나,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나는 없는 시간이다. 지인들에게 "너처럼 고스톱 못 치는 애는 처음 본다. 해도 해도 어쩜 그렇게 안느냐?"라는 구박을 받으면서도 '마냥 신나는 나'만 남는 시간이다.

이렇게 즐거운 시간이건만 왠지 모를 떳떳하지 못함이 남는 건 왜일까?


고스톱이라는 게 그렇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명절에 가족끼리 즐기다가 싸움이 나기도 일쑤이며, 고스톱에서 촉발된 싸움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일도 왕왕 있다. 몇 년 전 고스톱을 함께 치던 지인의 사이다에 농약을 넣어 살인을 한 할머니 이야기도 있고, 어제만 해도 분당에서 60대 남성이 70대 여성 둘을 살해했다.

푼돈으로 시작했다가도 도박으로 이어지고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처럼 중독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살림이나 육아를 내팽개친 '주부도박단'들 때문에 순수한 놀이라고 자부하기 힘들어진다.


브런치 초창기에 엮었던 브런치 북에서도 말했듯이 내가 하는 고스톱은 그런 류의 것이 아니다. 가계 경제를 축내지도 않고 살림을 내팽개치지도 않는, 건전한 놀이 문화로 정착시켰다.

모아둔 회비에서 만원씩 나누어 판돈으로 쓰고, 그날의 꼴찌가 벌금 5천 원만 내면 된다. 회비가 많아진다 싶으면 비싸고 맛난 것 먹으면서 없애버린다. 밥 먹고 차 마시는 시간 동안 신나게 놀면 그뿐이다. 못다 한 수다를 꽃피우고 서로의 고민도 자연스레 풀어놓을 수 있는 시간이다. 각자 일이 바쁘니 그마저도 한 달에 한번 될까 말까... 부정적인 구석이라고는 끼어들 시간도, 자리도 없다.

내가 기를 쓰고 치지 않는 이유, 이기는 게 큰 의미 없으니 '더럽게 못 치는 애'로 낙인찍혀도 그저 즐거운 이유다.


고스톱 자체가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결국 인간이, 관계가 문제겠지.

개개인이 가진 삶에 대한 태도나 가치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화투판에서, 돈이라는 예민한 물건이 오가는 상황... 갈등은 고조되고 본전은 아쉽고...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고스톱은 건전놀이문화다. >


* 그저 즐기는 거라고 해도 이제는 좀 잘 칠 때가 됐건만... 나도 참... 안 는다.


* 돈을 벌고자 하는 게 아니고 고스톱 자체가 재미있는 거라면 나처럼 마음을 내려놓고 즐기시길 권한다. 져도 즐겁고 이겨도 즐겁고... 살인은 왜 하나? 다시는 고스톱을 못 치는데... 쯧쯧쯧...


https://brunch.co.kr/brunchbook/warof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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