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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18. 2020

여든세 번째 시시콜콜

<생활 편>

올해 처음으로 학부모 특강을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원봉사센터 무료 강의뿐만 아니라 관공서, 각급 학교 등에서 강의들이 많았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학교, 관공서 등의 모든 강의, 봉사가 취소되었고 회의는 대부분 화상으로 진행했다. 그런 와중에 들어온 강의이니 감개가 무량했다. 

물론 대면 강의는 아니었다. 나만 해당 학교에 직접 가서 하는 원격강의였다. 텅 빈 교실에 혼자 앉아서 컴퓨터 모니터와 TV 화면을 번갈아 봐 가며 학부모 30여 명을 대상으로 두 시간 내내 혼자 떠들어야 했다. 쌍방향이지만 상대가 오디오, 비디오를 모두 꺼놓았으니 일방향 같은 쌍방향이었다. 대면 강의에서도 강사의 돌발 질문에 수강자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허공을 응시하는 일은 다반사다. 하지만 비대면 강의에는 강사와 눈 마주칠 불편함이나 질문에 대한 공포를 수강자가 원천 차단할 수 있다. 강사 혼자 외롭게 견디는 시간... 이건 줌 강의에 익숙하지 않은 나만의 문제일 확률이 높지만 말이다. 

뭐... 그래도 좋았다. 두 시간 동안 떠드느라 목이 다 갈라졌어도, 카메라 렌즈만을 응시하며 혼자 미친년처럼 떠들어도, 낯선 듀얼 스크린에서 마우스를 찾아다니느라 진땀을 흘렸어도 좋았다. 교습소를 폐업한 마당에 이렇게라도 쓰임을 찾게 된 것이 좋았고, 오래간만에 정장을 차려입고 화장도 하고 드라이로 머리에 힘준 것도 기분 좋았으며, 2시간 강의로 한 아이 학원비에 가까운 수입을 번 것도 좋았다. 


이렇게 좋아하는 장면을 어디서 보고 있었는지 한동안 소식이 없으시던 협회장님의 문자가 왔다. 10월에 지방고등학교에서 있는 강의를 맡아줄 수 있겠냐는 것. 별생각 없이 수락을 하고 보니 걸리는 문제가 몇 가지 있었다.


일단은 거리가 멀었다. 자차로 왕복 다섯 시간 걸리는 곳에 위치한 학교. 9시 수업 시작이니 늦지 않으려면 적어도 집에서 다섯 시 반에는 출발해야 한다. 그러려면 한 시간 전에는 일어나서 씻고 준비해야 할 터... 그걸 일주일에 한 번씩 3주에 걸쳐서 해야 했다. 벌써부터 겁이 났다. 전날 일찍 자야 할 텐데 그럴 수 있을까? 운전하면서 엄청 졸릴 텐데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 같이 가는 강사님과 5시간 동안 무슨 얘기를 하지? 

사실, 거리로 치면 더한 곳도 많이 다녔다. 같은 시간에 나가 SRT첫차를 타고 목포에 내려가 두 시간짜리 학부모 특강을 한 뒤 점심 먹고 다시 SRT를 타서 집에 오면 하루가 다 갔었던 일도 여러 번. 인천 모 초등학교에 9시부터 수업하느라 일주일에 세 번씩 한 달을 꼬박 새벽 6시에 출발해 막히는 고속도로를 두 시간 동안 운전했던 적도 있다. 장호원, 아산은 왕복 세 시간 걸려 오갔던 곳이고... 부산의 경우 1박 2일로 다녀오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강의료 문제. 

협회장님은 처음부터 속시원히 강의료가 얼마요 하고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었다. 협회에서 정한 기준이 있으니 대충 얼마겠거니 생각하고 다녀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만 이번 건처럼 하루가 꼬박 걸리고 교통비도 많이 들면 애매해진다. 강의는 여섯 시간을 하지만 왕복 5시간이라는 시간에 대한 보상은 누가 어떻게 해줄 것이냐 말이다. 목포에 다녀왔을 때 두 시간 강의를 위해 내가 길에서 보낸 시간은 10시간이었다. 하지만 강의료는 두 시간치... 억울했지만 책임져주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어려운 시국에 6시간의 강의료를 11시간으로 쪼개 시간당 페이로 계산해도 최저시급보다는 많을 테니 그게 어디겠는가. 집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누가 주나. 땅 파 봐라 그 돈 나오나...


마지막으로... 귀찮다.

4년 전 디베이트를 처음 배우고 나서 가르치는 경험이 급급해 열정 페이든 뭐든 불나방처럼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던 때와는 다르지 않는가. 초등학교부터 성인까지 두루두루 다양한 강의를 많이 해왔다. 교습소를 운영하며 주제, 교재를 만드느라 나름의 내공도 쌓였다. 이제는 경험을 넘어 경력도 쌓였으니 이윤을 추구할 때이다. 

하지만, 새로운 주제를 공부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새로운 도시의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보는 또 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기껏 4년 해놓고 경력이니 이윤이니를 따지는 것 자체가 글러먹은 정신상태 아닌가... 게다가 대면강의가 힘든 이 시기에 대면강의라니... 여행가는 마음으로 다녀오면 될터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전라북도 진안 출강은 반드시 가야 한다. >

<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


* 할까 말까 할 때는 해라,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고 했으니...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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