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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12. 2019

D-100 프로젝트
< D-78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남편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걸어서 세계 속으로>나 <세계테마기행>같은 해외여행 프로그램들이다. 

여행에 대한 욕망과 타지에 대한 호기심들을 여행 프로그램으로 해소하기도 하고, 간혹 다녀온 장소에 대해 나오기라도 하면 추억에 젖기도 하는 게 그런 방송들의 매력일 거다. 오늘 우연히 보게 된 방송에서는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운행하는 대륙횡단 열차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우리에게 아름다움과 낭만이 깃든 도시다. IMF가 터지기 직전, 남편은 어학연수를 떠났다. 연애가 한창이던 때였으니 나에게 그 시간은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느껴졌었다.(미친 X) 

어학연수가 3개월로 접어들던 무렵 IMF로 환율이 폭등하고, 남편은 더 이상 있기 힘들다고 판단해 다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고작 3개월도 견디지 못했던 난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끊었고 우린 그곳에서 재회했다. 난 대학시절,  방학 때마다 고모와 작은 아버지가 계신 애리조나에 가곤 했었다. 그 해 겨울방학 때도 애리조나 피닉스행을 핑계 삼아 중간에 일주일간 남편과의, 아니 오빠와의 여행을 계획했던 거였다. 


부모님께는 오빠가 어학연수하던 친구들과 하는 여행에 합류한다고 거짓말을 해놓았다.(미친 X) 그땐 죄송한 맘도 느껴지지 않으리만큼 둘만의 해외여행이 설레고 신나기만 했다. 렌터카를 몰고 다니며 금문교를 건너고, 배를 타고 알카트라츠 섬에도 들어갔다. 트램이나 케이블카를 타고 시내 곳곳을 다니던 기억도 난다. 시내 저렴한 작은 호텔도 기억나는데 얼마전 옛 기록물들 박스에서 그 호텔 리플릿을 발견하고는 감상에 젖기도 했다. 


일주일간의 여행을 끝내고 둘이 함께 피닉스의 작은아버지 댁에서 한 달을 지낸 후 함께 귀국했다. 양가가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무슨 배짱이었던 걸까?(미친 X) 

인화한 여행 사진을 함께 보던 어머니가 "왜 어학연수 함께 한 친구들은 안보이니?" 하고 물으셨다.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그 친구들 사진은 어차피 못줄 거니까 안 뽑았어요."라고 대답했다.(미친 X)

그때 엄마가 하신 한마디는. 

"임신만 하지 마라..."

화도 내지 않으셨고 추궁하지도 않으셨다. 

오로지 그 한마디.


당시 엄마의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 정도였다. 내게 딸이 있다면, 그 딸이 남자 친구와 일주일 동안 해외여행을 갔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미친년, 제정신이야? 어디 결혼도 안 한 처녀가 겁대가리도 없이 남자 친구랑 일주일 여행을 가? 그것도 해외여행을? 앞으로 밖에 나가지도 마!"라며 머리도 빡빡 밀어 놓고 밖에서 방문 걸어잠갔어도 분이 풀리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내게 한 건 그저 한마디. "임신만 하지 마라..."였다.

게다가 당시 IMF로 아버지의 사업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미국 여행 가겠다는 딸을 말리지 않고 조용히 보내주셨던 아버지... 내가 미국에서 돌아온 후 아버지는 집과 사무실을 정리하셨다.(나쁜 X)


남편이 말한다.

"우리는 늘,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답답하고 이해심 없고 꼰대 같다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네. 오히려 지금의 우리보다 더 깨어있으셨고, 지금의 우리보다 더 이해심이 많으셨으며, 더 열린 분들이셨네... 우리는 그렇게 못할 텐데..."


글 쓰는 내내 내 자신에게 '미친X'을 수없이 되뇌일만큼 죄송스러운 마음 한가득이다. 

그런데...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할것 같다는 생각에 더 죄송스럽다.

한번 미친년은 영원한 미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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