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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14. 2019

D-100 프로젝트
< D-76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마을교사 양성과정 4번째 수업을 했다. 디베이트 실습으로는 세 번째 시간.

"해도 해도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아요~"

"분명히 다 생각하고 준비해서 나갔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아요~"

그런데도 매주 오시는 것 보면, 필시 그 긴장감이 주는 맛에 중독되신 게 분명하다.


디베이트를 시작하던 때 나도 분명 겪었던,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떨림이다. 디베이트 말고 또 그렇게 긴장한 게 언제였더라? 기억은 1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바야흐로 2000년 후반. 첫아이 임신 4개월 때였다.

직업도 없고 임신도 했겠다, 남편이 출근한 오전에는 아침드라마도 보고 생활정보 프로그램 등도 챙겨보던 시절이었다. 그중에는 주부들이 출연하는 퀴즈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도전! 퀴즈 퀸"이 그것이었다. 4명의 주부가 나와서 16개의 문제를 맞히고  가장 점수를 많이 획득한 사람이 이기는 방식이었다. 문제판 하나마다 제시어가 쓰여있고 난이도에 따라 걸린 상금도 달랐다. 한 번의 찬스가 주어지는데 성공 여부에 따라 제시된 상금의 두배를 가져가거나 두배만큼을 토해내야 했다.

퀴즈를 좋아하기도 하고, 나오는 문제들의 수준이 웬만큼 풀 수 있는 것들이어서 호기롭게 참가신청을 해보았다. 예선을 본다며 연락이 왔고 지정된 장소에 가니 200명은 족히 될듯한 '주부'들이 모여있었다.  A4 몇 장에 걸친 문제들을 풀었고 다시 며칠 후에 예선 통과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첫 방송 출연이 24살의 임산부로 도전하는 '주부퀴즈'프로그램이라니... 그것도 주부가 된 지 반년만에...

처음 가보는 스튜디오에, 시어머니와 남편이 방청석에 앉아계시는 극한의 긴장 속에 놓였다. 그럼에도 초반에는 문제도 잘 풀었고 1등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냥 있어도 될 것을... 찬스를 쓰면 승리에 쐐기를 박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지막 남은 20점짜리 문제인 '스포츠'문제에 도전을 했다.

아직도 문제가 생각난다.

"북한의 최장신 농구 선수 이름은?"

알고 있었다. 분명 아는 사람이었다. 얼굴도 기억다. 이름이 입에서 맴도는데 확신이 안 다.

당시 진행자였던 최선규 아나운서가 "정답은?" "정답은?" "5초! 4초! 3초!"라고 조여왔다.

"이병훈입니다!"

"뭐라고요? 다시 한번 정확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때 한번 더 신중히 생각했어야 했다. 뭔가 아닌 듯싶었지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병훈?입니다."

"아.... 이병훈....... 아닙니다~~~ 정답은 명훈이지요~~~"


차라리 서장훈을 외쳤으면 덜 아쉬웠을 것 같다. 'ㅁ'과 'ㅂ' 때문에 꼴찌로 탈락할 줄이야...

대학시절 단과대 행정실 직원 이름이 '이병훈'만 아니었어도... 괜한 사람을 트집 잡았다.


한동안 잠을 못 이루었다. 누웠다가도 이불킥하며 벌떡벌떡 일어나 앉았다. 로또 2등 당첨이 이런 기분일 것 같다. 번호 한 개만 더 맞혔어도 1등인데...


그래도 지나고 보니 '참 재밌게 살았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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