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Nov 20. 2020

아흔 번째 시시콜콜

< 사회 편>

"자발적 비혼모"를 선택한 사유리 씨에 대한 기사가 연일 화제다.

한국에서는 비혼 여성이 정자를 공여받아 인공수정 시술을 받는 것이 어려워 일본에서 시술을 받고 출산을 했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온 나라가 귀 기울이고 있다. 뉴스에서는 그 말이 사실인지 팩트체크에 나섰다. 정치권에서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겠다며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체로 긍정적인 분위기다.


"언젠가, 사유리가 교과서에 실릴지도 모르겠어."

"교과서에? 왜?"

"모계사회로의 전환? 뭐 그런 걸 이끌어낸 최초의 여성으로 말이야. 이제는 아이를 낳는 것에도 남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거잖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기만 한 게 아니라 여성 중심, 모권 중심의 사회가 된다는 거지."


기사를 접한 남편이 던진 한마디에 충격을 받았다. 수평적인 인간관, 열린 사고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 같지가 않아서다.

"남성도 원하면 여성 없이 임신, 출산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인공자궁 같은 거 개발되면 말이야.  성전환 여성이 임신을 원하는 경우나, 반대의 경우도 많을 테고..."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남발하는 것으로 나의 당혹감을 표현하고 말았다.


자신의 아이를 낳을지에 대해 스스로 결정한 것,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급하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느니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것, 남편 없이 아이와만 가정을 꾸린 것. 그것만으로도 남자들은 극심한 위기의식을 갖는 걸까...

미혼모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잔존하고 엄마 혼자서 육아와 생계를 모두 책임지는 것이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 길을 선택했다는 것에 찬사와 격려가 쏟아진다. 그런데 한편에서 일부 남자들은 "어떡하지? 우리 이제 어떡하지?"라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걸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부장적인 사고에 길들여져 있을 경우, 남성과 여성이 사랑하고 결혼해서 이룬 가정만이 정상이라고 여기는 경우, 남자에게는 남자만이 해줄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믿는 경우 등 다양한 입장에서 전통적인 역할과 지위를 빼앗겼다고 생각할 수 있다. 퇴직한 남성이 가정에서 겪는 소외나 상실감, 박탈감이 앞으로는 나이 막론하고 전체 남성에게 느껴지는 감정일 수 있겠구나 이해해본다. 경제적인 부분뿐 아니라 생식적인 부분까지도 남성에 의존하지 않게 되는 세상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수 있겠구나...

대표적인 모계 사회를 이루는 고래를 보면서 인간 역시 언젠가는 여성이 임신과 양육을 도맡고 그들만의 연대로 사회를 유지, 보전할 것이라는 생각에 씁쓸해 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반드시 남자로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 자유로와지는 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도 되지 않을까.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거나 배제시킨 모계사회란, 있었던 적도 없을뿐더러 페미니스트들조차 원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은 아닐 것이다. 그저 여성이든 남성이든 각자가 행복한 세상, 어떤 가정을 이루건 어떤 사랑을 하건, 혹은 사랑을 하지 않건 모든 상황이 인정되는 세상. LGBT든 아니든 간에 그저 '인간' 자체의 삶과 행복이 화두가 되는 세상으로의 전환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자발적 비혼모의 등장은 모계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


* 12년 전, 허수경 아나운서의 비혼모 선언은 환영받지 못했다. 오히려 사회적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교과서에 싣는다면 그녀가 실려야 하지 않을까.

2008년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당당하게 주장하며 '자발적 비혼모'를 국내에 가장 먼저 알린 인물.


매거진의 이전글 여든아홉 번째 시시콜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