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편>
둘째 아이가 중학생이던 시절, 극성맞은 엄마에게 볼멘소리로 하던 말이 있다.
"언제까지 맨날 경험을 하라는 거야~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아?"
학교에서 실시하는 각종 대회 및 행사, 임원 선거, 방학마다 진행되던 봉사활동, 축제 등등 아이를 둘러싼 모든 활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독려하던 나에게 던진 불평이었다. 매사에 적극적이던 큰아이와 달리 매사 귀찮아하던 작은 아이가 못마땅하고 조바심이 났던 '나'다.
'하면 잘할텐데 왜 안 하지?', '일단 해보고 나면 좋았다고 하면서 왜 빼지?'라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일단 강권하도록 만들었다. 투덜대던 작은 아이는 중3 체육대회 때 여장을 한 채 운동장에서 춤을 추었다. 그것도 센터로. 소극적인 줄로만 알았던 아이의 변화에 내심 흐뭇했다.
'역시 내 생각이 옳았어! 사람은 경험한 만큼 보이고 성장하는 법이지. 겁나서 못하겠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주저앉게 하면 안 되는 거야. 어르고 달래서라도 해보게끔 하는 게 중요하지.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경험하는 과정에서 얻는 만족감과 성취감은 시도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것 아냐?'
라는 오만에 빠진 나는 이제 제자들에게 이 오만함을 발동하고 있다.
디베이트를 배우는 학생들 중에는 평소에도 말하기를 좋아하고 매사에 적극적인 아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의 경우도 많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게 쑥스럽고 떨려서 디베이트를 배워보겠다는 아이들. 잘하고 싶다는 전제가 없다면 배움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일수록 학교 생활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하는 나다.
토론대회면 더 좋고 그게 아니어도 뭐든 도전해보라 한다. 평소 그리기를 좋아한다면 그림대회에,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면 축제 오디션에 나가보라고 한다. 관심 있는 분야의 동아리도 직접 만들어 운영해보고 말이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일수록 배우는 것도 많다고 철석같이 믿기 때문이다. 철저히 '성과주의', '실적주의'라고 비난한다면, 상을 타거나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목표로 권하지는 않음을 강조하고 싶다. 그저 '경험' 하나에 방점을 찍는다. 내 아이들에게 강조했던 것처럼 그저 구성원으로서 적극적으로 조직을 즐겨보라는 것...
최근, 등교 수업일수가 늘어나면서 학교마다 미뤄두었던 대회들이 연이어 열리고 있다. 가르치는 아이들 중 몇몇은 내게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독서감상문 대회, 토론대회, 과학 토론대회 등을 준비하면서 자신들이 작성한 글들을 보내오고 피드백을 해달라는 적극성을 보인다. 그것들을 봐주다가 하루가 다가는 판국이다. 그 와중에 대회에는 관심도 없고, 친구들의 대회 준비 이야기를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아이들이 맘에 걸렸다.
"OO아~ 너도 토론대회 나가보는 거 어때?"
"싫어요. 안 나갈래요."
"왜? 안 나가고 싶은 이유가 뭔데?"
"그냥요."
"귀찮아?"
"아뇨?"
"다른 일 때문에 바빠?"
"아뇨?"
"그럼... 두려워?"
"네... 안 해본 거라 무서워요."
두렵다는 건 오히려 좋은 신호라고 또 내 맘대로 생각해버렸다. 해본 적 없어서 피하고 싶은 것이고 잘하고 싶어서 두려운 것이라고...
결국 그 학생은 토론대회에 나가보기로 하고 나와 함께 문자를 주고받으며 준비 중이다.
권유를 해놓고 한편으로는 확신이 없다. 그 친구가 예선을 통과할지의 확신 따위를 말함이 아니다.
나의 이 강요가 그 친구에게 '경험'이 주는 단맛과 '시도'가 주는 묘한 떨림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을까.
내 비뚤어진 신념에 불과해 힘들게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적극적인 학교생활을 권하는 것은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