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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08. 2020

여든여덟 번째 시시콜콜

<학교 편>

주방 한편에 놓인 탁상달력을 매일 몇번씩 확인한다. 평소 휴대폰 달력에 일정을 적어놓고 확인하며 지내지만 올해 들어 다시 탁상달력을 이용 중이다. 시시때때로 바뀌고 들쑥날쑥인 등교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등교가 몇 차례나 연기되던 3,4월과 온라인 등교만 하던 5월까지는 내내 집에서만 지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등교가 시작된 6월 3일 이후로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등교 수업인지, 오늘은 가는 날인지 확인해야 했다. 다행히 담임선생님께서 엄마들과의 카톡방에 매일 아침마다 전달사항을 남겨주셨다. 고등 1학년이 아니라 초등 1학년인가 착각할 정도로 꼼꼼하셨다. 학교를 가야 하는지, 몇 시까지 가야 하는지, 언제까지 뭘 제출해야 하는지, 자가진단은 몇시까지인지를 조례하듯 알려주셨다. 다른 반에는 없는 혜택이었다.


등교 수업과 온라인 수업이 규칙적으로 진행되던 때, 하필 학생 중 확진자가 두 번이나 나오는 변수를 맞닥뜨렸다. 덕분에 등교수업일중 상당수를 온클로 대체해야만 했다. 수도권의 고1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우리 아이 학교 1학년은 학교 맛을 많이 못 봤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요 바꿀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고. 그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1학년 대표 어머님의 전화였다.


"11월부터 고3 학생들 대부분이 등교학습주간에도 가정학습을 신청하고 등교를 하지 않고 있잖아요. 그러니 실제로는 전체 학생 중 3분의 2 가 아닌 3분의 1 학생들만 등교를 하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고3을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고1을 등교시키도록 조정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고등학생이 됐지만 학교를 많이 가보지도 못한 1학년들을 학교가 버린 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통화를 하며 달력을 들여다봤다. 12월까지 남은 온라인 등교는 총 3주. 그중 수능 전주와 고3들 내신 시험이 있는 수능 다음 주는 건드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다음 주 한주인데, 화요일인 오늘 급하게 조정한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1학년 학부모님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학교 측의 성실한 답변을 학부모님들께 알려드릴 책무가 학부모회장에게 있으니, 할 일을 해야 했다. 학부모회 담당 선생님께 저간의 사정을 전하고 교무부장 선생님께 말씀이라도 전해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의견이 있다는 것을 알아만 주셔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꼬박 하루가 지난 다음날 저녁 낭보를 전해주셨다. 학부모님들의 의견을 충분히 공감, 반영하여 다음 주를 등교 수업으로 전환한다는 것. 모처럼 학부모회장으로 뜻깊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 그때! 1학년인 아들의 반론이 시작됐다.


"그건 아니지. 학생들 중에는 온라인 수업을 선호하는 학생들도 있을 텐데? 수행이 많은 요즘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 있게 되면 여유롭게 준비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다고. 게다가 그걸 왜 학생이 아닌 학부모들 마음대로 건의하고 정해? 건의를 한 그 학부모님은 아이와 상의하고 건의하신 걸까? 갑자기 궁금해지네? 몇 학년 몇 반 누구야? 그 친구한테 물어보고 싶어. 넌 이 사실을 알고 있었냐고. 너도 동의한 거냐고."


뜨악! 헉!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감정이 실려있긴 했어도 걷어내고 나면 살아남는 논지가 하나 있었다. 학생의 주인은 학생이라면서 정작 결정적인 사안에 대해 학생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는 것. 그저 어른들이 결정한 대로 오라면 오고 집에 있으라면 있어야 하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는 것.


학생들의 의견을 알아보기에는 결정해야 하는 시간이 촉박했고 학사일정관리라는 것은 엄연히 학교의 소관이라는 궁색하지만 현실적인 변명을 늘어놓았다.  올해는 특수한 상황이라 온라인 등교를 한 것이지 본디 학생은 학교를 가야 하는 게 맞다는 구시렁거림도 늘어놓았다.

아이도 "나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라고 구시렁거리며 제방으로 돌아갔다. 아마도 등교 수업 전환이라는 소식을 듣고 나면 학부모회장의 아들이 대체 누구냐며 온갖 눈총을 받아아햘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학사일정 변경 시 학생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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