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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03. 2020

아흔다섯 번째 시시콜콜

< 생활 편 >

지난 토요일은 중요한 날이었다. 반년 넘게 함께 준비했던 학부모 온라인 컨텐츠 TF팀의 마지막 성과물을 만드는 날이었다. 바로 그 '온라인 컨텐츠'인 유튜브 촬영을 하는 날.

지난 봄부터 열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짜내고, 여러번에 걸쳐 업체를 만나 대본 수정을 하고, 장학사님께 까이고, 담당자분이 '투쟁'해서 강행하게 되는 전 과정에 종지부를 찍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함께해야했다. 게다가 내가 엑스트라로 한 꼭지 등장하게 되는 씬을 촬영하는 날이었으니 더 중요한 날이었다.


그런데 촬영을 며칠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가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입을 옷이 없다거나 외모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어차피 뒷통수만 나오기로 했으니...

폭증하는 확진자수 앞에서 두명의 수험생을 둔 나는 두려움을 넘어선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수능을 앞두고 지난주부터 외부활동을 자제해 온 나였다. 아이들의 학원 픽업 외에는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고 디베이트 수업도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실시 후 원격으로 전환했다. 그런데 만에 하나, 촬영장에서 확진자와 동선이라도 겹치는 날에는...


촬영장에서 확진자 발생 -> 촬영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 검사 실시 -> 검사 후 나의 결과에 따라 가족들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음.

경우 1) 검사 후 음성일 경우 : 나는 자가격리. 엄마가 자가격리자이니 수능을 보는 아이도 교육부에 알리고 조치대로 해야함.

경우 2) 코로나로 확진될 경우 : 가족들 모두 검사 실시 -> 음성이든 추가 확진이든 판정이 남 -> 아들은 수능고사장 다시 지정받음. 남편은 시험 기회 상실. 수능 일주일 후에 있을 큰 아이의 실기시험도 기회 상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도저히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것 같았다. 결국, 교육청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말씀드렸다. 수험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셨던 담당자께서는 당연히 오면 안된다 하시며 수험생 엄마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와 이해를 해주셨다. 덕분에 불편한 마음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그런데 어제, 수능을 하루 앞둔 저녁.

촬영을 담당했던 PD의 사무실 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담당 PD가 검사 대기중인데, 혹시라도 확진 판정을 받게 되면 상황이 복잡해질 듯 했다. 지난 토요일까지 검사 범위에 들어간다면, 내가 그자리에 함께 있었다면, 그래서 검사를 받게 된다면, 확진 판정을 받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상황이 발생하고 나면 "내가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고스톱에서 초출인 패를 먹었다가 싸는 경우 플레이어는 아쉬워하며 "아, 쌀것 같았는데... 그럴것 같았는데."라고 말한다. 슬픈 예감은 더더욱 틀리는 법이 없다. 하지만 그럴것 같은 막연한 기분때문에 중요한 일을 그르칠 수는 없다. 예정된 일, 해야할 일이라면 불길한 기분을 감지해도, 못먹어도, 싸더라도 go 할수밖에 없다.


하지만 때로는, 묘한 불안감이 나를 감싼다면 가끔은 용기를 내어 제동을 걸어야 한다. 설사 결과적으로 아무일 없더라도 말이다. 가끔 그런 얘기가 들리지 않던가. 왠지 기분이 나빠 출장을 가지 않았는데 타려고 했던 비행기에 사고가 났다든가 하는 그런...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들...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엄마의 예감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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