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건 우리 안의 소리

by 늘봄유정

쉬는 시간만 되면 후다다닥 뛰어갔다.

칸마다 긴 줄이 늘어선 전화부스 중 감이 좋은 곳으로 자리를 잡고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내가 서있는 줄이 가장 느리게 느껴지는 건 왜인지...

지금처럼 들여다볼 휴대폰도 없던 시절. 그 긴 시간을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수화기를 오래 붙들고 있는 앞사람의 뒤통수도 째려보고 괜히 발로 땅을 툭툭 치다 보면 내 차례가 왔다.


012-000-2446

내 삐삐 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서 확인하는 음성메시지엔, 사랑하는 이의 달달한 멘트도 들어있었고 늦게 귀가하는 딸을 향한 부모님의 으름장도 있었다.

012-000-6451

그의 삐삐 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서 음성을 녹음하고, 확인하고, 지우고, 다시 녹음하고, 확인하고 지우고. 이러기를 몇 번... 나 역시 뒤통수가 따가워지는 느낌이 들어야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숫자만 확인할 수 있던 삐삐를 사람들은 십분 활용했다. 해학과 기지를 가진 우리 국민은 숫자로 모든 감정을 전했다. 그리움부터 분노, 간단한 요구사항까지 전달했다. 빨리 와라, 메시지 확인해라, 전화해라...


휴대폰으로 뭐든지 다하는 세상이다.

오히려 전화 기능은 순위 안에 들지도 못할듯하다. 메시지로 소통하고 음식을 주문하고 음악을 듣는다. 쇼핑을 하고 TV를 보고 뉴스를 읽는다. 게임을 하고 영상을 시청하며 혼자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문득 외롭다고 느끼지만 휴대폰을 다시 들여다보면 금세 잊을 감정이다.

어떻게든 누군가와 연결되기 위해 기를 쓰던 시절의 유물은 더 이상 필요 없어졌다. 터치 한 번으로 세상 모두와 연결되어있다고 느끼는 시대다.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세 가지는?'이라는 질문에 '라이터, 책, 지도'등의 고전적인 답 대신 '휴대폰, 기지국, 휴대용 충전기 많이'라는 답이 더 어울리는 오늘이다.


"디지털은 뇌만 자극하지만 아날로그는 몸도 자극합니다."

몸과 뇌의 균형이 중요하다며 정재승이 <열두 발자국>에서 했던 말을 내 맘대로 해석해 보자면, 사람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눈을 맞추며 두 손을 맞잡을 때 뇌 역시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움에 사무쳐 전화박스로 내달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뭐라고 음성을 남길까 고민하다가 그저 '1177155400'만 남기고 아쉽게 돌아서던 경험. 식구 모두 잠든 밤, 이불속에 전화기를 몰래 갖고 들어앉아 사랑을 노래하는 팝송 한 소절을 음성메시지에 녹음하던 기억. 새벽녘까지 울리던 '828255'를 외면하며 진탕 술을 마시던 시절의 죄책감. 이 모든 것들이 내 뇌에 남아 다시 손으로 전해지고 통화버튼을 눌러 내 목소리를 들려주게 된다.


그립지만 다시 사용할 수는 없다. 그 답답함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필요 없지만 버릴 수는 없다.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를 연결해주는 물건이다.

너와 나의 연결 고리

이건 우리 만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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