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상에서 함께 독서하는 판을 벌린 것. 여기저기서 하고 있는 독서운동을 따라한 것에 불과하다. 이미 벌려져 있는 판에 스리슬쩍 들어가도 되건만 호스트를 자처한 데는 이유가 있다.
올해 수능 만점자의 공부 비결이 독서습관이었다는 기사를 접하자마자 고2가 되는 아들과 나는 아침 독서를 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작심은 삼일도 아니고 하루천하로 끝나버렸다.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잠드는 내가 아침 단잠을 포기 못한다는 이유가 컸고 고등학생 아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책을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리 둘만의 결심과 의지로는 힘들었다. 의지를 실천으로 옮길 확실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남편이 늘 강조하는 '환경 조성' 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시간에 앉아 책을 읽어야만 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했다. 둘이서만 했다가는 또 흐지부지 될게 뻔했다. 함께 할 동지 모집의 필요성을 절감한 이유다.
줌 독서실 개설을 만천하에 공표하다. 그렇게 되면 책을 읽으러 찾아오는 어떤 이를 위해 호스트인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책 앞에 앉을 것이다. 함께 책을 읽다 보면 왠지 모르게 경건해지고 다른 이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한 시간을 꽉꽉 채워 자리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다 보면 어느새 그 시간의 독서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겠지...
그래서 줌 회의 아이디를 생성하고 안내문을 만들었다. 지역 맘 카페와 아이가 다니는 학교 학부모 밴드에 글을 올렸다. 디베이트 제자들에게도 널리 알렸다.
이름하여 <함께 읽는 즐거움. 아독 야독 50일 챌린지>
시작일인 1월 11일 전날 밤. 이게 뭐라고 잠이 안 왔다. 행여 늦잠이라도 자서 첫날부터 어긋나 버릴까 걱정이 돼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줌 회의가 100명까지인데 101번째 들어오려던 사람에겐 미안해서 어쩌나 고민도 했다. 10분마다 울리는 알람 몇 개를 끄고 약속한 시간을 맞이했다. 호기롭게 열어둔 회의실에는 나를 포함해 세명이 조용한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의 외로운 독서를 염려한 남편과 평소 책 읽기를 힘들어하던 중1 제자였다. 챌린지에 동참한 아들은, 책은 읽겠지만 줌은 켜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조촐히 셋이서 아침을 열었다.
첫날밤에는 여섯 명, 둘째 날 아침인 오늘 아침엔 다섯 명이 되었다. 회의실이 미어터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 혼자서는 안 되던 일이 함께 하니 됐다는 생각에 묘한 쾌감이 올라왔다. 게다가 온전히 책 읽는 두어 시간이 생겼다는 것도 만족스럽다. 책 읽으려고 앉으면 여기저기 흩어진 집안일들이 눈에 밟혀 책장 넘기기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타인의 독서에 방해될까 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덕분에 독서 속도가 느린 내가 어제 하루 동안 150페이지를 읽어냈고 오늘은 새책을 집어 들었다.
순전히 내 이기적 욕망에서 시작된 독서 챌린지다.
타인을 이용해 내 이기심을 채웠으니 이제 그네들이 날 이용해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