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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an 15. 2021

이제 슬슬...

아주 오래간만이었다. 대낮에, 완벽하게 혼자 집에 있게 된 것이...

학원 특강이 시작된 작은 아이가 낮부터 집을 비운 날이었다. 학원에 데려다주고 들어오던 집의 공기가 달랐다. 완벽한 자유의 공기랄까?


부지런히 집을 정리했다. 매일 하던 일이건만 느낌이 달랐다. 어느 곳을 가도 아무도 없다. 무엇을 해도 뭐하냐고 묻는 이도 없고 늘어져있다 해도 눈치 볼 사람이 없다. 나는 간사한 인간이라서, 언젠가 이 자유로움을 외로움으로 둔갑시켜 징징거릴 날이 오고야 말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홀가분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친구들을 맞이했다. 그네들 역시 나와 사정이 같았다. 몇 달 동안 감금 혹은 억류되어 있다가 모처럼 자유시간을 맞았다. 4인 이하 방역 수칙은 준수했지만 불안함은 기본 장착이었다. '괜한 만남이 돼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면서도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새삼 깨달았다. 난 게으른 사람이 아니었다.

가족들이 한 명이라도 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집안일 멈춤'버튼이 눌러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집이 휴식 공간인 가족들과 달리 나에게는 직장이다. 우리 사이의 상충되는 묘한 지점을 없애기 위해 최소한의 집안일만을 해왔던 것이다. 줌 수업 중인 아이에게 방해될까 봐, 쉬는 남편에게 걸리적거릴까 봐 몸을 사렸다. 혼자가 된 순간, 부스터라도 단것처럼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를 오가면 분주해졌다.


성인들과 만나 깔깔거리며 시간을 보낸 것이 얼마만이던가. 그런데, 두어 시간 수다 좀 떨었다고 이렇게 기가 빨릴 줄은 몰랐다. 지난 일 년간 체력이 많이 약해져 있었군... 코로나 전에는 어떻게 종일 만나 먹고 떠들었는지 모르겠다며 모두 의아해했다. 부실해진 체력. 오랜 집콕이 가져다준 여러 병폐 중 하나일 게다.


회의도, 수업도 모두 비대면으로 해결하다 보니 제대로 옷을 갖춰 입지도 않게 됐다. 집에서 입던 옷에 상의만 갈아입고 컴퓨터 앞에 앉는 일이 빈번했다.

톡으로, 문자로만 대화를 하다 보니 얼굴을 맞대고 매끄럽게 대화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단어는 머릿속을 맴돌고 입은 어물거렸다.

무표정으로 책만 읽다 보니 얼굴 근육이 경직됐다. 마스크로 코와 입이 가려지자 얼굴로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움직임마저 움츠러들었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얼굴은 할 일이 없어졌다.

이런 삶에 익숙해지다 보니 가끔 있는 외출이 반갑기보다는 귀찮아졌다. 이런 식이면 자유가 와도 곧바로 누리지 못할게 뻔하다.


백신을 맞는다고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임을 안다. 평생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할 세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은둔형 외톨이 같은 삶은 이제 슬슬 청산해야겠다.

회복될 일상을, 선물같이 놓일 자유를 맞이할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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