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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an 24. 2021

중년의 도전

"ㅇㅇ이네 다녀올게. 보일러가 동파됐는지 물이 줄줄 새고 있다네?"

"당신이 가서 보면 아나? 당신을 부를게 아니라 수리기사를 불러야지."

"수리기사님 올 때 같이 있어달래."

얼마 전, 혼자 사는 친구 집 보일러를 봐주러 간다는 남편의 말이 올해 들은 말 중 가장 웃긴 말이었다. 16년째 사는, 본인의 집 보일러 키고 끄는 법도 모르는 사람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건설업을 하셨던 친정아버지는 뭐든 뚝딱 고치셨다. 전구만 가는 게 아니라 전등 전체를 바꿀 줄 알았고 수도꼭지 교체, 변기 밸브 고장 등 전문가를 불러야 하는 일들을 아버지는 직접 해결하셨다. 

남편은 아버지와 달랐다. 전구를 교체하는 일도 버거워하는 듯 보였다. 문과라서 그런 일에는 전혀 재주가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요즘 남편이 달라지고 있다. 재주가 없는 게 아니라 관심이 없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중...

 

며칠 전 새벽녘 안방 화장실을 가다가 잘 눌리지 않는 스위치를 바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의 혼잣말이요 넋두리였다. 나중에 아버지가 우리 집 오실 일이 있다면 그때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걸 어느새 들은 남편이 로켓 배송으로 스위치를 주문했다.


유튜브로 보고 또 보며 스위치 교환법을 숙지했다며 결의를 다졌다. 제대로 된 공구조차 없어서 회사 공구를 하루 빌려까지 왔다. 회사 공구래봤자 드라이버 두 개가 다였다. 우리 집엔 그마저도 없었다.

두꺼비집을 내리고 손바닥에 빨간 덧칠이 된 목장갑까지 꼈다. 저 비장함 무엇? BGM이라도 하나 깔아주고 싶은 발걸음이었다. 

해체하기 전 연결된 전선을 사진 찍어놓았다. 나름 체계적으로 일하고 있다. 찍어놓은 사진을 봐가며 교환할 새 스위치에 전선을 정확히 끼워 넣었다. 벽속으로 스위치를 밀어 넣고 커버까지 탈칵 덮었다. 

두꺼비집 좀 올려달라고 하더니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이라도 하듯 경건하게 불을 켰다. 

어라? 불이 들어왔다. 제대로 연결이 됐다니... 신통방통해서 엉덩이를 두들겨주었다. 


한참이 지나 화장실을 들어가려고 불을 켰다. 돌아가던 환풍기가 꺼진다. 뭔가 이상하다. 습관대로 불을 켜려고 하니 꺼지고 끄려고 하니 켜진다. 좌우가 바뀌었다. 크게 문제 될 건 없지만, 어색하다. 16년간 유지된 관성에 제동이 걸렸다. 손이 버벅거리니 뇌까지 버벅댄다. 


"스위치 말인데, 불을 켜려고 하다가 잠시 뇌 정지가 와! 뭔가 잘못됐어. 좌우만 바뀐 게 아니라 위아래도 바뀐 것 같은데?"

"위아래는 안 바뀌었어." 아들이 아빠를 편든다. 

"아! 그거? 일부러 그런 거야! 좌뇌, 우뇌를 골고루 활발하게 쓰라고~ 또 뭐 고칠 거 없어? 뭐든지 말해! 스위치도 정 원하면 다시 바꿔 달아 줄게."

당황하지 않고 호탕하게 웃는 그는, 스위치 교체 하나로 신이 났다. 그 흥을 깰 수 없어 스위치는 그대로 쓰기로 했다. 당분간 화장실 불을 켜려면 아래 스위치를 눌렀다가 위를 눌렀다가 다시 아래를 눌렀다가를 반복해야 한다. 나의 좌뇌인지 우뇌인지는 당황해서 몸 둘 바를 모를 것이다. 

못해서 안 했던 일이 아닌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남편을... 응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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