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렇게, 이겼어야... 속이 후련했냐!
백세 번째 시시콜콜
"그때... 그냥 져줄걸 그랬어..."
점심과 함께 반주를 들이켜던 남편이 중년 특유의 감상에 젖어들며 던진 말이었다.
대화의 시작은 주식 이야기였다. 너도나도 주식을 한다고 하고 주식해서 재미 좀 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은 남편은 주식보다는 경제를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단다. 그래서인지 요즘 새벽 일찍 일어나 책을 읽고 유튜브 강의를 듣곤 했다. 그나 나나 관심도 없던 영역이라 장이 몇 시에 열고 닫는지에 대해서도 문외한이었다. 나이 50에 주식 장 열리는 시간도 모르는 게 창피하다며 우리 아들들은 경제,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빠보다 똑똑하고 강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애들 어렸을 때, 왜 그렇게 기를 쓰고 팔씨름을 이기려 했나 싶어. 그냥 져줄걸... 그땐 그렇게 생각했지.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를 알려줘야 한다고 말이야. 어려운 일, 두드려 맞을 일 천지인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아빠라는 산을 먼저 넘겨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지. 아빠를 누를 힘을 기르다 보면 조금씩 강해질 거라고. 그런데, 그게 아이의 자존감을 더 무너뜨린 거 아닌가 싶어. 어렸을 때부터 아빠라는 큰 산이 가로막아 좌절되고 또 좌절되는 경험을 한 게 아닐까... 그때 져줬더라면 작은 성취감을 맛보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게 되지 않았을까?"
흔한 가정의 풍경.
밥을 먹다가, 장난을 치다가, 혹은 대화를 나누다가 불붙은 부자간의 자존심 대결은 팔씨름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십중팔구, 아니 십중의 십은 아빠가 이기기 마련. 쪼꼬만 아들을 이긴 아버지는 의기양양해져 아이의 머리를 헝크러트리며 말한다.
"짜식. 아빠 이기려면 아직 멀었다. 밥 더 먹고 와라!"
그러면 아이는 씩씩 거리며 훗날을 기약한다.
세월이 흘러 장성한 아들과 머리가 희끗한 아버지의 설욕전이 펼쳐진다. 십중팔구 아들이 아버지를 이기고 흐뭇한 아버지는 아들의 등을 두들기며 말한다.
"어느새 다 커서 아빠를 이기네. 장하다."
남편은 이 해묵은 장면의 첫 스타트를 후회하고 있었다. 그때 져줬더라면 아이가 더 큰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안 그래도 각박하고 힘든 세상을 살게 될 아들에게 아빠라는 산 하나가 쓸데없는 고단함을 보탠 것이 아닐까. 밖에서 두드려 맞느라 지쳤을 아들에게 아비는 그저 져주는 사람, 받아주는 사람이 돼줬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며칠 전 밥 먹다가 하게 된 팔씨름에서는, 아직 이길만한 것 같았지만 져주었노라 했다. 이제라도 져주고 싶었다고 했다.
코끝이 찡해졌다.
그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끄집어내며 후회하고 반성하는 남편의 모습이 짠했다. 동시에, 자신보다 10cm나 큰 근육질의 아들을 여전히 이길 수 있다고 하는 중년의 아비가 불쌍했다.
그렇게 남편은 감상에 젖었다는 걸 핑계 삼아 점심 반주로 소주 두병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러면서 만류하는 아내에게 이르기를...
"소주 여섯 병 먹는 아들놈에게 질 수는 없지!"
뭐냐....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아버지는 아들과의 팔씨름에 져주어야 한다. vs. 아버지는 아들과의 팔씨름에 이겨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