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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Feb 13. 2021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

백네 번째 시시콜콜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

쌍둥이 자매 배구선수의 과거 학교 폭력이 논란이다.

그들의 중학교 동창이라는 이의 피해 폭로 글이 올라왔고 가해자로 지목된 그들은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과거 사실에 대해 인정을 한 것이다. 출연했던 방송의 다시보기 영상은 삭제됐고 광고도 내려졌다.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이지만 부정적인 여론은 거세다. 소속팀과 한국배구연맹, 대한민국배구협회는 징계를 고민 중이고 배구계에서 영구 퇴출시켜야 한다는 국민청원이 올라온 상태다.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산 상황.


기사를 본 남편은 처벌과 징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단, 과거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의 선수들이 10여 년 전인 초중등 시절에 했던 행동으로 처벌받는 것은 부당하다.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들의 행동을 비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과거의 잘못으로 현재의 활동에 제약이 가해진다는 것은 잘못된 처분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체육계의 폭력을 묵인하던 시절이었고  오히려 관대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어떠한 폭력도 처벌받아 마땅하고 특히 체육계에 만연한 폭력적 관행은 문제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감독과 코치의 선수 폭행, 선배 선수들의 후배 폭행은 정신무장, 실력 향상을 빌미로 용인되었던 시절이다. 그 누구도 그게 문제라고 이의 제기하지 못했으며 가해 당사자 역시 문제의 심각성을 배우지도, 인지하지도 못했다.


마지막으로, 보여주기 식의 형식적이고 공정하지 못한 처분이다. 같은 폭력을 행사하고도 걸린 사람은 처벌받고 폭로되지 않은 사람은 처벌받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 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재생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벌백계하는 것도 필요하다지만 알려진 몇 명을 처벌하고 징계한다고 해서 근본적인 처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수조사를 실시하거나 체육계 전반에 대한 쇄신,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


남편의 의견에 일견 동의하는 부분이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먼저, 가해자에게는 과거의 일이지만 피해자에게는 현재 진행형의 일이기 때문이다. 일상화된 폭력이라서 가해자는 모른다. 그것이 어떤 공포를 유발했는지 말이다. 가해자의 기억에는 말을 조금 세게 했을 뿐이고 웃자고 한 말에 불과하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였다거나 기강을 잡으려 했던 행동이었을 거다. 그래서 별일 아니라 여겼던 일이 피해자에게는 평생 따라다니는 악몽이다. 게다가 그런 가해자들이 TV 프로그램에 세상 해맑은 얼굴로 나오고 부와 명성까지 따르고 있다면 절대 과거에 머무는 일이 될 수 없다.


또한, 폭력이 용인되던 시절의 일이라고 해서 폭력 자체가 비호되어서는 안 된다. 금품을 갈취하고 칼로 협박하는 행동은 명백히 범죄다. 어린 시절 치기 어린 폭행이라고 하기에는 그 정도가 심하다. 초중등학생이면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나이다. 결국 기본적인 인성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폭력을 일삼고, 타인이 느낄 공포와 절망에 공감하지 못하는 인성.


마지막으로, 근본적인 대책과 더불어 폭력에 대한 엄중한 경고는 필요하다.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끝나서 처벌받지 않는다면 만연한 폭력의 고리를 끊기 힘들다. 자신의 그릇된 행동은 걸리지 않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이들에게는 경고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어딘가에서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무엇이 폭력인지, 폭력에는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를 확실히 알려줄 수 있다. 잘못된 행동에는 반드시 그에 따르는 책임이 있다는 것, 그것이 공정한 것 아닐까.



과거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인지되고 문제시되는 일들이 많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도 그 예다. 과거에는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거나 하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나 행동이 현재의 잣대로 보면 범죄인 경우가 많다. 그로 인해 답답해하고 부당하다 생각하는 남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똑같은 행동이라도 기준이 변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너무 피해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불평불만도 터져 나온다. 과거를 살아온 사람에게 변한 세상의 새로운 잣대를 가져다 대는 것은 가혹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기준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괜찮던 일들이 이제는 범죄다.

하지만, 처벌에 대한 기준이 바뀐 것이지 피해자가 느끼는 참담함의 정도가 바뀐 게 아니다.

칼로 협박당하고 부모 욕을 들어가며 매일 똑같은 폭력에 노출되었던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과거의 그들이건 현재의 그들이건 똑같은 강도로 두려움을 느낀다.

술을 핑계로 치근대며 불쾌한 스킨십을 일삼던 상사, 동료에게 느꼈던 치욕스러움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다. 과거에는 괜찮았는데 지금 갑자기 법이 바뀌어서 싫어진 게 아니란 말이다.

가정교육이라며 아이를 때리고 집 밖으로 내몰던 부모들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아무 일도 아니겠지만 당하는 아이 입장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끔찍한 기억이다.

세상이 피해자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가해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과거의 잘못으로 처벌받는 것은 정당하다. VS. 부당하다. >


* 명절은, 태어날 때부터 피곤한 날이었던 것처럼 몸이 가라앉는다. 그래서 기사를 보며 이런저런 논제를 던지는 남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글감을 던져주었다며 냅다 받아먹었을 텐데 말이다.


* 남편은, 징계를 내려놓고 올림픽때가 되면 가해자들을  다시 불러들일 협회관계자들이 더 나쁜 놈들이라며 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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