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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r 06. 2021

평판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백여덟번째 시시콜콜

둘째는 집에서 가까운 일반고 2학년생이다.

중3초 때 학원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특목고 준비를 했지만 학교 성적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경험'에 큰 의미를 두고 결국 집에서 가깝고 형이 졸업한 학교에 입학했다.


나도, 아이들도 이 학교에 큰 불만이 없다. '무릇 학교란, 친구 만나 재잘거리고 급식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추억을 쌓는 곳'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바, 집에서 가깝고 급식 맛있고 학생들 착하고 선생님들 좋으시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어쩌면 학교를 평가하는 냉철한 기준이 없는 게 나의 문제일 수는 있겠지만 대관절 그러한 기준이 왜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아이들이 좋다고 하니 나 역시 이 학교가 좋다. 좋다고 생각하다 보니 앞으로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 데, 좋아진다는 게 어떤 거지?


2년 전 부임하신 교감선생님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공간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먼저, 1층에 위치한 도서관 한쪽 벽면을 허물어 폴딩 도어로 바꾸겠단다. 시원하게 열린 문밖에는 작은 연못이 있는 정원이 나온다. 따뜻한 봄날 햇살을 맞으며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행복하다고 하셨다. 탁 트인 공간만큼 아이들의 마음도, 생각도 트이지 않겠느냐는 것.

기존의 딱딱한 독서실도 바꿀 계획이란다. 재미없게 빽빽이 늘어선 책상 대신 스터디 카페 분위기의 길고 큰 책상을 가운데에 두고 조명도 카페처럼 바꾸겠다 하셨다. 세상의 변화에 늘 뒤처지는 학교지만 변화의 바람을 넣고 싶다는 포부.

성과를 내겠다는 교감선생님의 개인적인 야망일지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궁극에는 아이들을 위한 일이니 반가운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점점 좋아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가 되는 것.


학교에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분이 계신다. 왜 우리 학교는 입시 결과를 홈페이지에 게시하지 않고 교문에 현수막도 달지 않느냐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몇 명, 연세대학교 몇 명, 고려대학교 몇 명.....'과 같이 그 해 입시에서 얼마나 혁혁한 결과가 있었는지를 광고해달라는 것이다. 매년 초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학교들은 엄마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단다. 상대적으로 우리 학교는 입결이 알려지지 않아 별로인 학교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미용실에서 초등학생을 둔 어머니를 만났어요. 'OO 고는 가고 싶지 않아요. 왠지 별로일 것 같아요.'라고 하는데 한마디도 하질 못했어요. 이미 엄마들 사이에서 우리 학교는 그런 학교가 되어있더라고요."

입시가 각자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는 이상, 입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고등학교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그 최선이 어떤 결과를 보여줬는지 역시 알릴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수한 인재들이 우리 고등학교를 1 지망으로 선택할 것이고 그들이 좋은 결과를 내면 그것이 다시 평판으로 이어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학교가 입시결과를 광고하지 않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교장선생님이 바뀌셔도 고수되고 있는 그 이유는, '학교는 입시를 위한 곳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대학 입학 실적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을 때 대학을 못 가거나 안 간 학생들이 느낄 소외감까지 학교는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인근 학교만큼의 입시 실적을 우리 학교도 내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는 진학에 실패한 아이들도 있고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한 아이들도 있다. 그들에게도 이 학교는 두고두고 따라다닐 모교다. '인서울 대학을 잘 보내는 학교'보다는 '다양한 진로를 선택한 모든 아이들을 자랑스러워하는 학교', 이것이 더 멋진 평판이요 타이틀 아닐까. 가고 싶은 학교, 행복한 학교가 되면 입시 결과야 자연스럽게 좋아지는 것 아닐까.


이 고민 역시 해묵은 이상과 현실의 갈등 일지 모르겠다. '우리끼리만 알고 있으면 뭐하냐, 실적을 널리 알려서 좋은 학생들을 유입할 생각은 못한다.'라는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광고를 안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결국은 학교의 처신에 마음이 기우는 나는... 이상주의자인 걸까...


그래서 오늘의 디베이트 Topic은...

< 고등학교의 평판은 입시결과로 형성된다. >


* 사족 1

입시결과 좋은 학교에 목을 매는 엄마들을 향해 지인은 이렇게 사이다 발언을 했다.

"그게 다 뭔 소용이야. 내 새끼가 잘 해야지~"


* 사족 2

그분은 왜 미용실에서 만난 학부모에게 당당히 말하지 않았을까.

"저희 고등학교 참 좋은 학교예요~~ 아이들의 행복을 우선으로 고민하는 학교거든요~ 밥도 얼마나 맛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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