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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r 17. 2021

뭔가 잘못됐다.

백열 번째 시시콜콜

쌍둥이 배구 선수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여기저기에서 쉴 새 없이 튀어 오르고 있다. 연예계 스포츠계를 막론하고 자고 일어나면 학교폭력 폭로가 이어진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활동을 중단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강경한 대응을 예고하는 이도 있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건지,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는 언론은 있는 건지, 진실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건지... 진흙탕 싸움이 된 지 오래다. 


과거의 폭력이건 현재의 그것이건 단죄되어야 마땅하다.

가해자는 평생을 억울함과 트라우마로 사는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을 해야 한다.

물론 어디부터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거짓인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은 필요하다. 하지만 수십 년 전 일이거나 개인의 기억에 의한 서술이라 애초에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운 사안이 되기 십상이라는 게 문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라는 이들의 폭로는 소음이 돼버렸고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커리어는 하루아침에 내동댕이쳐졌다. 모두가 패자만이 돼버린 싸움. 


혹자는 말한다. 

"세상과 시대에 대한 분노가 쌓여 어디로든 폭발해야 하는데 그 대상이 유명인사가 된 것이다. 나보다 잘 나가게 된 사람, 세상 근심 걱정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로 화살이 향한 것이다. 실제 비난받아 마땅한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지 오래다. 그저 퍼부을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라고.


또는, 

"그 당시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지만 시대가 바뀌어 당당한 피해자로 나설 수 있게 되자 너도나도 나서게 된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그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무렇지 않던 시절 한복판에 있었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당한 것은 너무 크게 사무치고 가한 것은 편의상 삭제해버린 것 아닐까."


어쨌든 간에, 끝도 없는 폭로와 공방전이 정상인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몸살이라면 견뎌야 한다. 견디되,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위한 기준,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시끄러운 난장에 불과하다면, 멈춰야 한다. 멈추되, 멈출 사안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확인해야 한다. 억울해 못살겠는 사람과 반성 없는 나쁜 사람은 없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디베이트 Topic은...

< 공인을 향한 학교폭력 폭로를 멈춰야 한다. vs. 계속 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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