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할머니와 동자

치킨가게 복기록

by 늘봄유정

신도시의 겨울밤은 유난히 쓸쓸했다.

아파트와 주택만 들어섰지 상권은 아직 활성화가 안되었고 곳곳에 공터가 많았다. 그러니 추운 겨울 한복판으로 갈수록 손님의 발길이 떨어지는 건 당연지사. 지금처럼 배달앱이 발달했더라면 그나마 사정이 나았을지 모르겠다. 게다가 당시 본사에서는 브랜드 컨셉상 배달 불가 방침을 고수했다. 오픈빨도 떨어지고 계절 불황도 겹친 초짜 사장 부부에게는 혹독한 첫겨울이 아닐 수 없었다.


그즈음, 남편의 전 직장 사람들에게는 '점'바람이 불었다. 부천에 용한 도사가 한 명 있는데 그분이 하라는 대로 하면 잘된다는 소문이 돌았단다. 수입자동차 영업사원들이었던 그들은 한대라도 더 팔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마음으로 도사를 찾았고 약간은 부산스러운 지령을 받고 돌아왔다.


직원 중 한 명에게 떨어진 독특한 지령은, 새벽에 일어나 손수 지은 밥으로 주먹밥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오케이. 거기까지는 크게 힘들 것 없었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그렇게 만든 주먹밥을 들고 회사가 있는 삼성역 사거리에 나가 북쪽인지 서쪽인지를 향해 절을 하라는 것이었다. 절의 횟수도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기 나이만큼...그렇게 하면 새해 영업에 문제없을 것이라고 했단다. 안 들었으면 모를까 일단 귀속으로 들어온 이상 안 하자니 찝찝한 상황이 됐다. 결국 그는 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안치는 남편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아내의 시선도 견뎠고, 벌건 대낮에 삼성역 사거리에서 어딘가를 향해 주먹밥을 펼쳐놓고 절을 하고 있는 자신의 뒤통수에 꽂히는 직장인들의 딱해하는 시선도 참아냈다. 도사의 말대로 영업이 잘 되는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매장에 놀러 와 자신들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직원들의 얘기에 우리 부부도 혹했다. 돈 10만 원과 약간의 수고스러움으로 매출만 올릴 수 있다면야, 삼성역이 아니라 광화문에서도 절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우리는 예약을 잡고 어느 날 이른 아침 부천으로 향했다.


신통하다는 도사들이 으레 그러듯, 그는 우리를 훤히 꿰고 있었다. 어느 대목에선가는 그의 말에 감정이 복받친 내가 서럽게 울기도 했다. 점쟁이의 입장에서 우리는 홀리는 대로 꽤 잘 따라오고 있는 고객이었을 테다. 이야기가 무르익었고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보 사장에게도 지령이 떨어졌다.


"할머니랑 동자가 도와주고 싶다네. 배만 안 곯게 해 주면 돼. 그러면 그 둘이 알아서 손님들 많이 몰고 올 것이여. 큰 밥그릇에다가 흰쌀을 수북하게 담으시오. 그리고 그 위에 막대사탕을 하나 놔두고. 그걸 가게 주방 안쪽에, 사람들 안 보이는 곳에다가 잘 놔둬요. 그렇게만 하면 그다음은 할머니랑 동자가 알아서 할 것이니..."


우리에게 떨어진 생각보다 순하고 간단한 지령에 만족스러웠다. 가게로 오자마자 시키는 대로 했다. 뽀얀 흰 쌀을 그릇 가득 넘치게 담았고 그 위에는, 동자가 무슨 맛을 좋아할까 한참 고민 끝에 샀던 추파춥스 사탕을 얹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단 말이지? 할머니랑 동자가 알아서 다 한다고 했겠다?'

그렇게 기다림은 하루, 이틀 이어졌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엔 헛소리를 한 도사를 탓했다가 나중엔 할머니와 동자의 근무태만에 흠씬 욕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내 우리는 인정해야 했다. 이곳은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 신도시라는 걸 말이다. 매일 밤 칼바람이 불어오는 길거리로 내몰린 할머니와 동자는 얼마나 애가 탔겠는가... 그들은 필시 이런 대화를 나누었을지 모르겠다.

동자 : 할머니~ 우리 밥도 얻어먹었고 사탕도 얻어먹었으니 어서 손님을 몰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
할머니 : 낸들 안 그러고 싶겠냐? 그러니까 오늘도 너랑 이렇게 길거리로 나온 거 아니여...
동자 : 그런데 왜 아무도 안 데리고 가요?
할머니 :....... 누가 돌아댕겨야 데리고 가지, 돌아댕겨야... 개미새끼 데리고 가랴?


영 소질은 없지만 그 장면을 상상하며 끄적여봤습니다... 대략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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