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기억으로 남은 직원들, 그 두 번째 이야기...
A는 동네 지인의 대학생 아들이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A에게 사회경험을 시키고 싶다던 A의 어머니는 우리 가게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다며 아들의 아르바이트를 부탁했다. 매달 받는 용돈 외에 가게에서 버는 월급만큼의 추가 용돈을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으로 아들을 꼬드겼다. 예상보다 성실하게 일을 했지만 특유의 거드름이 있었다.
B는 A의 소개로 일하게 되었고 둘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껄렁껄렁하고 촐싹 맞았지만 홀서빙을 하는데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찾아서 일을 하지는 않고 딱 주어진 만큼의 일만 하는 타입이랄까.
C는 구인광고를 보고 직접 찾아온 직원이었다. 행동이 굼뜨고 말하는 것도 어눌했지만 착하고 순해 보여 잘 가르치기만 하면 함께 오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가지 일을 시키려면 여러 번 설명해야 했지만 그 정도쯤이야...
A, B, C의 근무요일이 한참을 안 겹치다가 우연히 A와 C가 함께 일하게 된 날이 있었다.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기에 물어보니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노라 했다. 친하진 않았어도 구면이라 그런지 일하는 내내 대화도 나누고 장난도 치는 것처럼 보였다. 사는 동네도 다른데 동창끼리 우리 가게에서 만나다니,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하구나 싶었다.
A와 C 둘이서 함께 근무했던 그날의 영업이 끝나갈 무렵, 주방에서 마감을 준비하던 내 눈에 안색이 안 좋아진 C가 들어왔다. 급하게 주방에서 나가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C는 숨을 헐떡였고 안색이 창백해져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옆에 있는 A는 우물쭈물했다. 서둘러 119에 신고를 했다. C는 갑자기 구토가 나온다며 밖으로 뛰어나갔고 화장실 앞 복도 바닥에 속을 게워내었다. 때마침 도착한 구급대원들이 C를 구급차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조치를 취해주었다. 다행히 이내 진정이 되었고 놀란 나와 남편은 C를 먼저 퇴근시켰다. 그러고 나서 A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제가 장난으로 C 휴대폰 비밀번호를 바꿨어요. C가 빨리 풀어달라고 하는데 장난기가 발동해서 매운 소스를 한 숟가락 먹으면 풀어주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C가 소스를 진짜로 먹는 거예요. 진짜 먹을 줄은 몰랐는데, 그걸 먹고 저렇게 속이 뒤집어진 거예요..."
갓 스무 살이 된 녀석들이라 아직 고등학교 때의 장난기를 못 버렸나 싶었다.
"그런 장난을 왜 치니? 큰일 날 뻔했잖아. 위에 경련이 일어났었나 보네... C 부모님이 얼마나 놀라시겠니..."
지인의 아들이라 심하게 야단도 못 치고 사건은 일단락됐다. 큰 사고가 아님을 다행으로 여겼다.
하지만 다음날, 근무시간보다 일찍 나온 C는 머리를 박박 민채 나타나 당장 오늘부터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전날 밤의 소동을 알게 된 아버지가 크게 화를 내셨고, 아르바이트고 뭐고 군대나 가라며 머리를 밀어버리셨노라 했다. 걱정하셨을 부모님께 사죄 전화를 드리고 싶어 연락처를 물었으나 C는 극구 거부했다. 아버지께는 본인이 알아서 잘 말씀드릴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꾸벅 인사를 한 후 그 길로 끝이었다. 우리 부부는 착잡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오픈 준비를 했다.
며칠 후 B의 아르바이트 날. A에게서 C의 소식을 들은 B는 뭐가 신났는지 떠들기 시작했다.
"C는 원래 그렇게 당하는 애였어요. ㅋㅋㅋㅋ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C한테 장난 많이 쳤거든요. 수학여행 가서도 C한테 장난 많이 쳤었는데... ㅋㅋㅋㅋ 이불장 속에 있는 이불을 다 꺼내고 C를 가둔 다음에 그 안에다가 에프킬라를 잔뜩 뿌렸어요. 그러면 C가 엄청 기침하면서 문 열어 달라고 애원했지요. C의 팬티도 몽땅 숨겨두고 검은 비닐봉지를 입고 다니라고 했어요. C는 팬티 대신 검은 비닐봉지를 입고 부스럭 거리며 팬티 돌려달라고 징징거리며 돌아다녔지요.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너무 웃겨요. 하하하하"
경악스러운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 대는 B가 어이없어 한동안 쳐다봤다.
"어떻게 친구한테 그렇게 할 수가 있니? 네가 그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해봐. 힘들지 않겠니?"
"제 성격상 당하고만 안 있죠. 저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에요."
"그런 말이 어딨어? 너 동생 없어? 동생이 당하고 들어왔다고 생각해봐!"
"제 동생도 저 닮아서 절대 그런 일 안 당해요."
오만정이 떨어졌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인걸 안다면 저렇게 무용담처럼 말하지도 못하겠지... 악마가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싶었다. 더 말해봐야 알아듣지도 못할 테고 함께 일하기는 더더욱 싫었다.
결국, 어떤 핑계인가를 대서 그만 나오게 했다.
그렇게 과거 학교 폭력의 가해자였던 B와 피해자였던 C가 동시에 떠났다. 학창 시절 방관자였다가 우리 가게에서 C를 괴롭힌 A도 내보내야 했는데, 지인의 아들이라 쉽게 내치지 못했다. 주의를 주는 정도로만 마무리한 것이 이제야 아쉬운 지점이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중년의 남자분 한분이 초저녁에 치킨을 드시러 오셨다. 주문을 받고 돌아서는 내게 "우리 아들이 몇 달 전에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죠~"라며 말을 걸어오셨다. 얘기를 하다 보니 C의 아버지였다.
"아... 한참 지났지만 그때 일은 죄송했어요. 저희 직원이 장난을 치는 바람에... 많이 놀라셨죠? C는 군대 갔어요?"
아버님은 황당해하며 대답하셨다.
"무슨, 일이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C는 군대 아직 안 갔는데요?"
"아... 그래요?...."
C의 아버지는 그날의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계셨다. 아버지가 크게 화내셨다는 것, C의 머리를 박박 깎아버린 것, 당장 군대 보내겠다고 한 것, 그중 어느 것이 사실이고 거짓인지는 모르겠지만 C의 아버지는 생전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셨다. 119가 왔던 날만큼이나 황당한 순간이었다.
A와 B에게는 낄낄대며 회상할 해프닝일지 모르겠지만 C에게는 악몽이었다. 아빠와 군대라는 온갖 구실로도 모자라 삭발까지 해가며 자신을 놓아달라고 우리에게 사정을 했다. 제발 자신을 보내달라고... 그렇게 해서라도 A와 B에게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
수년에서 수십 년 전에 일어났던 학교폭력의 기억이 현재의 삶까지 잠식한 이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 중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때로는 억울한 누명일 수도 있다. 진실은 당사자들만 알 테지... 아니 어쩌면 A와 B처럼 기억에도 남지 않을 만큼 '아무 일도 아닌 일'이라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C같은 피해자들은 여전히 그 기억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테고...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악연이다.
A, B, C또래의 아이를 둔 엄마 입장으로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면 마음이 더 아프다. 스무 살이 넘었어도 여전히 친구들의 괴롭힘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는 가슴이 찢어진다. 가해자들을 찾아가 대신 복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동급생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가해를 하고 낄낄대는 아이를 둔 엄마라도 마음이 아프다. 나의 어떤 양육태도가 아이를 그렇게 끔찍한 악마로 자라게 했는지 괴로울 것이다.
진행형이던 폭력의 현장 한가운데에 있었던 나는, 뭐였을까? 무능하고 눈치 없는 주변인이었을까? 적극적으로 그들의 관계에 문제제기를 하고 해결했어야 했나? 나도 결국 방관자였나? 어리바리한 채로 있다가 이도 저도 아닌 찜찜한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비겁자일까...
며칠 전, A의 엄마와 오래간만에 식사를 했다.
"우리 아들이 사장님과 맛있는 거 드시라며 10만 원을 줬어~ 오늘은 내가 낼게~"라는 그녀를 보며 기분이 묘했다. A에게 나는 어떤 어른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그가 사주는 밥을 아무렇지 않게 얻어 먹어도 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