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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16. 2019

D-100 프로젝트
< D-74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목포의 눈물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목포에 출장 차 다녀왔다.

유아용 디베이트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토론 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작년부터 수차례 목포에 다녀가면서 제대로 구경 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 점심 먹고 바로 서둘러 가도 집에 가면 해질녘이니 여유가 없었다. 1박 2일로 여유 있게 오고 싶었지만 숙박비까지 제하면 일당에서 남는 것도 없겠다 싶었다.

올 때마다 과한 점심 대접을 받았었는데 오늘은 어린이집 행사로 점심과 목포역 배웅을 못해주신다는 목포 담당 소장님의 말씀이 내심 반가웠다. 짧은 시간이지만 목포역 근처라도 알차게 돌아다녀 보리라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10분, 20분, 30분...  배차시간이 30분이라고 했건만...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도, 택시도 지나가지 않는 영암군 삼호읍. 거기서부터 꼬였다.

겨우 잡아탄 택시를 타고 근대역사문화관으로 갔다. 가는 내내 누군가와 통화하며 실랑이를 하시는 기사님... 직전에 태운 손님을 엉뚱한 곳에 내려드렸단다...


입장료 2,000원을 내면 근처에 있는 '근대역사문화관 2'까지 관람할 수 있다고 했다. 지도상으로도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 보였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지나갈 땐 안보였다... 목포 여객터미널이 있는 바닷가까지 갔다가 다시 한참을 걸어 나와서야 겨우 찾아 들어갔다. 덕분에 최근 논란의 중심지였던 근대역사문화공간을 쭉 둘러볼 수는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기 전에 기사님께 여쭸더랬다. 근처에 맛있는 식당이 어디냐고. 야심 차게 소개해 주신 식당을 찾아갔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외관을 봤을 땐

'그래, 이런 게 숨은 맛집이지. 현지인이, 그것도 택시기사님이 소개하신 곳이라면야!'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TV에 소개된 집이라 그런 건지, 원래 토박이 음식점이라 그런 건지 손님도 많았고 배달도 많이 나가고 있었다. 한참만에 받은 만원짜리 백반. 상다리 휘어지는 정찬을 원한 건 아니었지만 공복 15시간 만에 맞는 첫 끼니였는데...

TV에서 연신 맛있다고 한 만화가를 욕할까?

택시 기사님을 욕할까?

아님 '시장기'라는 강력 무기를 장착했는데도 까다로운 나의 입맛을 욕할까?

내 투덜거림을 남편이 톡으로 달래줬다.

"*** 선생 본인은 옛날에 먹은 기분과 추억을 생각해서 요즘도 먹히는 맛집일 거라고 소개했겠지만 이미 사람들의 눈높이는 본인보다 훨씬 높다는 걸 모르는 걸 거야..."


1인 상차림이라 양이 적은 건 이해함... 그래도 조기탕 덕분에 한 그릇 다 비웠다.


기차 출발을 25분 정도 남기고 밥집에서 나왔다. 한 군데 더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목포역 근처 꼭 들러야 할 빵집으로 소개된 곳. 새우 바게트와 크림치즈 바게트가 유명한데 낮 12시만 넘어도 못 산다는 블로그 글을 봤더랬다. 2시가 다 돼가니 그 맛난 빵을 목포와서도 못 먹고 갈까 봐 맘이 바빠졌다.

어라? 엄청나게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또 만들었겠지. 다행이다.'

집에 오자마자 아들과 먹어 본 빵 맛은. 빵맛이었다.


이렇게 찜찜한 목포 기행은 처음이었다. '죽기 전날 이렇게 찜찜한 하루를 보내면 어쩌나?'하는 상상도 했다.사실, 그 시작은 버스가 오지 않던 시점이 아니목포역에서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에 보았던 세월호부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그곳을 지나면서 찍은 사진을 남편에게 보냈더니 톡이 왔었다.

"세월호구나... 그냥 저렇게 방치하는 거야? 그러려고 몇 년을 그렇게 세상 시끄럽게 한 거야? 이 정부도 틀린 거야?"


왼쪽은 작년 세월호 모습, 오른쪽은 오늘...


그러나 솔직히...

오늘 하루의 찜찜함을 세월호에 비유하는 것도 허세고 이기적인 행동이다.

그깟 버스 좀 늦게 오면 어떻다고, 그깟 밥 한 끼 맛없었으면 어떻다고...

목포는 찜찜함이 아니라 눈물로 기억해야겠다...


집에 오는 기차 안에서 검색해보니, 세월호의 거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받아들이겠다는 곳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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