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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17. 2019

D-100 프로젝트
< D-73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낙숫물이 댓돌 뚫는다.'
'작은 도끼도 연달아 치면 큰 나무를 눕힌다.'
'개미 메 나르듯'
'티끌모아 태산'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무심한 듯, 티 나지 않는 꾸준한 노력이 큰 결실을 가져온다는 말이다.

베란다 정리를 하다가 만난 소금 한 포대에서 찾은 오늘의 교훈이다.


<100일 남은 여생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로는 정리가 생활화되었다. 계속 버리고 치운다. 

그렇게 집구석 구석을 돌아다녔다고 생각했는데도 왜 그건 안보였을까? 베란다 정 중앙 벽에 떡하니 기대어 있던 소금 한 포대. 3년 전인가 서산에 사시는 작은아버님께서 좋은 소금이라고 사 보내신 천일염이었다. 간수를 빼주어야 한다고 하셔서 포대 밑에는 스테인리스 물솥을 받쳐 두었다. 한창 떡 찔 때 쓰던 물솥이었는데 용도 없이 나뒹굴다 결국 간수를 품게 되었다.


간수도 다 빠졌을 테니 용기에 조금씩 덜어 놓을 요량으로 포대를 잡아들었는데, 나일론 포대가 푸스슥 힘없이 으스러졌다. 집 나간 서방님을 기다리다 앉은자리에서 재가 되었다는 어느 여인네가 이랬을까? 

소금과 포대 부스러기가 뒤엉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돼버렸다. 

어찌어찌 소금과 포대를 수습하고 보니 바닥에 받쳐 두었던 물솥이 보였다. 솥 바닥에 간수와 소금 결정들이  담겨있어 뜨거운 물을 부어 녹기를 기다렸다. 


다 녹은 물솥의 모습은 처참했다. 군데군데 녹슬고 원래의 반짝반짝한 자태는 없이 거무튀튀해진 것이... 

스테인리스 연마제와 철수세미로 구석구석 닦아주었다. 지금까지 방치해놓은 것이 심히 미안했다. 좌천 내지 유배 보내졌다가 다시 복권되어 돌아온 신하를 맞이하듯 나름 정성을 쏟았는데... 이미 늦었다. 스테인리스 물솥의 한 구석에 구멍이 뚫려 물이 줄줄 새고 있었다. 미안함과 서운함에 이어 '소금 이 녀석'하고 소금을 째려보았다. 


원망스러움을 뒤따른 감정은 '경외심'이었다. 

그저 짜디짠 소금일 뿐인데 어떤 지난한 노력으로 저 구멍을 만들어냈을까? 화학을 잘 모르니 간수의 어떤 성분과 스테인리스의 어떤 성분이(혹은 원래 있었던 녹 성분과) 어떤 화학작용이 생겨 이러한 결과를 냈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반드시 논리적인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보이는 것은 소금의 부단한 노력뿐이었다. 3년간 하루도 쉼 없이 파내려 갔을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덥거나 춥거나, 빨래가 잔뜩 널렸거나, 옆에서 식물들이 죽고 새 식물들이 들어오거나 상관없이... 주인의 눈에 발각되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파내려 간 구멍으로 '쇼생크 탈출' 한편 찍을 수 있었을 텐데...


거의 매일 달리기를 하는 남편이 마라톤 대회를 2주 앞두고 있는데  목디스크와 컨디션 난조로 연습을 못하고 있다. 

"몸 이곳 저것 아픈 게 이번 마라톤 나가지 말라는 신호인가?라고 생각하는 건 핑계겠지?"

"아니다. 몸을 다시 잘 만들어 봐야지."

혼자 묻고 혼자 답한다. ㅎㅎ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스테인리스 물솥의 소금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


나는 평생 무엇을 그렇게 무던히, 묵묵히 해본 적이 있었던가... 갖은 핑계, 할 수 없는 이유를 백만 가지 찾아가며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렇게 매일매일을 기록하는 일이 내게는 '낙숫물'이고 '작은 도끼'이며 '티끌'이자 '한 걸음'이다. 

아니, 소금이다.


* 내가 구독을 하고 있는 한 작가분이 오늘 올린 글 말미에 이렇게 적으셨다.

"여러분 브런치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교통사고 나고도 글감 생겼다는 생각이 먼저 드니 말입니다."

격하게 공감했다. 

후다닥 씻어서 "구멍 났네?"하고 쓱 버렸을 물솥 하나를 보고 글감을 기어이 생각해 낸다. 

쓴다는 행위는 날 파브르 뺨치는 관찰자로 만들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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