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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18. 2019

D-100 프로젝트
< D-72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아가야~ 사랑하는 내 아가야~

엄마보다 한 뼘이나 큰데 아직도 집에서는 "애기"라고 불리는 내 작은 아가야~


오늘은 네 중학 시절 마지막 운동회가 있었지.

초등학교 3학년도 아니고 중학교 3학년짜리 아들 운동회를 뭘 구경 가느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엄마는 궁금했단다. 꽃보다 남자의 '구혜선'역을 맡아 퍼포먼스를 한다는데 여장은 잘했는지, 센터를 맡아 춤을 춘다는데 부끄러워 아무것도 못하는 건 아닌지, 친구도 없이 쭈뼛거리며 멀뚱히 서있기만 하는 건 아닌지...


너는 어렸을 때 끼도 많고 멋도 아는 아이였지. 비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에 맞춰 춤을 추고 런닝을 들어 배를 보이는 퍼포먼스를 하던 4살. 좋아하는 여자 친구에게 세상에서 제일 예뻐 보이는 단풍잎을 주워 선물하던 5살. 그 아이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얼른 방에 들어가 유치원 원복을 벗고 멋진 티셔츠로 갈아입던 6살.


그렇게 시간이 흘러 6학년 때까지도 엄마가 옆에 누워줘야 잠을 자던 아이였지.

엄마에게 혹독한 사춘기를 선사하는 형을 보며, 혼자 슬퍼하던 엄마를 보며,  "전, 형처럼 하지 않을게요..."라고 위로하던 아이였지. 언제부터인가 너도 여느 아이들처럼 성장의 절차를 밟았지만 너에게는 굳이 '사춘기'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가 않구나...


모든 감정을 엄마에게 표출하던 형과는 달리 참고 삭이는 게 더 많아 보였던 네 속이 곪지는 않을까...

온 동네 아이들이 다 제 친구였던 형과는 달리 좋아하는 몇 명 하고만 어울리는 네가 외롭지는 않을까...

늘 허허실실 거리는 형과는 달리 까칠해 보였던 네가 남들에게 미움받지는 않을까...

축구며 농구며 실컷 뛰고 땀한바가지 흘리는 걸 좋아하는 형과는 달리 집에서 뒹굴거리는 걸 좋아하는 네가 삶의 재미있는 여러 가지를 놓치고 살지는 않을까...

늘 염려하였던 나였단다.


그런데 오늘, 엄마는 너에 대한 모든 걱정을 내려놓았단다.

여자 친구들이 해준 곱디고운 화장과 귀엽게 묶어 준 머리를 하고는 구혜선 역할을 잘 소화해 내고, 엑소와 유재석이 부른 'Dancing King'에 맞춰 멋지게 춤을 추었던 너.

친구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고 구령에 맞추어 전력을 다해 줄다리기를 하던 너.

추웠는지 누군가의 옷도 스스럼 없이 빌려 입고 아무 데나 풀썩 앉아 있기도 하던 너.


엄마는 놓치고 있었네....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밥하는 엄마에게 조용히 선풍기를 돌려주던 사람이 너라는 걸...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엄마도 드세요~"라고 챙기던 건 너뿐이라는 걸...

사랑한다 아가야~~

고맙구나... 잘 커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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