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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19. 2019

D-100 프로젝트
< D-71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안방과 거실 화장실 청소를 끝내고 샤워까지 마친 후 '좀 쉬어볼까?' 하던 그때, 조깅 나간 남편의 톡이 왔다.

세상 귀찮았다. '날씨가 좋은 걸 모르나 뭐? 날씨는 아들 운동회였던 어제도 좋았다 뭐?' 투덜거리면서도 나가겠다고 했다. 두 아들의 입시로 소외됐다고 느끼며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는 남편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탄천길을 걸으면서 손을 꼭 잡아준다. 땀이 줄줄 나서 찝찝한데도 마냥 좋단다. 일방적이다.

"하늘이 너무 맑지?"
"저 흐린 구름 안 보이냐!"
"저기 무슨 행사하나 보다. 비누도 주네~ 받아가자~"
"집에 있는 비누도 안 쓴다!"

연애에 남녀 역할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연애를 막 시작한 여자아이마냥 재잘거리며 좋아한다. 일방적이다.

20년 전에는 내가 저랬던 것 같은데, 나이 먹으니 호르몬 변화가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그래도, 40 넘은 투실투실한 아줌마인 나를 예뻐해 주고 만날 쓰다듬어주니 감사한 일이다. 틈을 주지 않고 지속적으로 하는 스킨십, 닭살스러운 멘트들 역시도 일방적인 애정 표현이다.

 같이 살갑게 애교를 부려주지는 못해 미안하기도 하지만, 또 그렇게 튕겨줘야 제맛이라며 너무 순순히 따라주면 싫어한다. 이것 역시 일방적이다.


10년 전쯤인가, 결혼기념일에 건네준 편지에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11가지 이유>가 쓰여있었다.

처음엔 너무 감동스러웠다가, 읽을수록 내가 너무 하녀스러워서 화가 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편지도 일방적이다. 순전히 본인 관점에서 이뻐 보이는 구석을 얘기하고 이렇게 예뻐해 주는 남편 어디 있냐는 것 같은 느낌... 페미니스트 입장에서 본다면 문제가 많은 부부관계로 보일 듯하다. 


예전엔, 

'사랑은 상대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맞춰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가 내가 원하는 방식의 사랑을 전해주지 않으면 짜증 나고 화나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보다 생각했다. 반대로, 상대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맞춰주려다 보니 그 자체가 스트레스고 힘든 일이었다. 


이제는,

'사랑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명, 일방적인 사랑법.

지친 하루를 보낸 그 사람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는 것. 

섬세한 손길로 끊임없이 그녀를 만져주는 것. 

오랜 시간 서로를 관찰하여 상대가 표현하는 최선의 방법을 제대로 알고 인정하기에 가능한 사랑법이다. 


다시 읽어봐도 6번, 8번, 9번은 상당히 거슬리지만 여전히 그러한 '나'이기에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다.

나의 모든 것을 저리도 사랑해주는 사람이니, 나오라면 나가고, 걷자고 하면 걸어주는 것이 나의 사랑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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