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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y 08. 2021

웃프다.

"나 어제 겉절이 담갔어~"

"어머~~ 맛있겠다~ 침 넘어간다. 갓 지은 쌀밥에 그것만 먹어도 맛있겠네."

"자기는 오늘 저녁 뭐할 거야?"

"글쎄... 뭐하지? 돼지고기 넣고 김치찌개나 끓일까?"

동네 친구들과 탄천을 걸으며 수다를 떱니다. 대화 내용이야 뻔하죠. 남편 얘기, 자식 얘기, 연예인 얘기, 어디 아픈 얘기, 반찬 얘기.

매일 반복되는 레퍼토리인데도 끝이 없습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인데도 재미납니다.


맞은편에 할머니 두 분이 걸어오십니다.

가까워질수록 두 분의 대화가 또렷이 들려오네요.

"요새 오이가 싸졌더구먼. 그래서 어제 오이지 담갔지."

"어떻게 담궈?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대?"

"그냥 소금물 끓여 붓는 거지 뭐."

"저녁은 뭐할겨?"

"그러게... 오늘은 뭐해먹는대? 댁은 뭐할겨?"

"된장찌개나 끓일까나?"


아... 친구들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3,40년이 지나도 동네를 이렇게 걷고 있을 우리들의 모습이 연상돼 웃기면서 대화의 주제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씁쓸했습니다. 앞으로도 30년 이상을 매일 반찬거리 걱정하며 살아야 다니요...


할머니 두분도 우리를 스치며 같은 생각을 하시지 않았을까요?

'우리 옛날에도 저러고 댕겼지... 그때도 동네 걸으면서 저녁 반찬 걱정했는데 여태 이러고 있구먼.'


이 운명의 악순환을 끊어버리자고, 우리가 선봉에 서자고 결의를 다집니다. 언제까지 식구들 밥걱정만 하고 살지는 말자며 씩씩거리며 헤어집니다.


다음날 만나서는, 다시 저녁 반찬 걱정입니다. 운동이 끝나고 들어가는 길에 사이좋게 장도 봅니다. 이러면서 3,40년이 훌쩍 지나가 버릴 것 같네요...


그나저나 오늘 저녁 반찬은 뭐해 드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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