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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y 22. 2021

젠더 갈등

"여자 애들은 다 조폭이야!" 

초등학교 시절 아들들이 입에 달고 살던 불만이었습니다. 학교가 남학생들의 폭력에 대해서는 엄격했던데 반해 여학생들의 폭력 사용에 대해서는 관대했던 까닭입니다. 여학생들은 늘 피해자, 약자로 여겨졌습니다.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에게 행하는 폭력은 '여자 아이가 때려봤자지...', '남자가 참아야지...'등의 이유로 순화되었습니다. 전혀 문제시되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남학생들의 가슴속에 젠더갈등의 맹아가 싹트고 있었던 것은 그때부터가 아닐까 싶네요.


"여경 할당제는 없어져야 해!"

어느 날 작은 아이가 날카롭게 말했습니다.

"분명 남녀 간에 신체적, 물리적인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걸 인정하지 않고 일정 비율을 여성으로 뽑는 건 맞지 않는다고 봐. 남자 순경 한 명이 제압할 수 있는 범죄자를 여경 몇 명이 달라붙어도 제압 못하는 건 비효율적이고 굉장히 비합리적인 것 아냐? 국가적으로도 손해인 거고."

"그렇긴 하지. 신체적 차이에서 오는 차이를 차별로 간주해서 할당제로 균등한 기회를 주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거. 그건 엄마도 문제라고 봐."

"힘이 약해서 위험한 일, 어려운 일은 못한다고 하면서 여경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남자들과 동등한 수준의 일처리 능력은 갖춰야 그 직업을 할 수 있는 거잖아."

"기사에 보니, 내년부터는 남녀 구분 없이 공채시험을 치를 거래. 체력평가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건데 뉴욕경찰의 직무표준시험을 참고해서 어느 한 성별에게만 유리하지 않도록 직무의 적합성을 판별할 거라고 하니... 지켜봐야지... 아들아 너무 흥분하지 마라..."

"여자들이 또 뭐라고 하겠지. 남자들과 똑같은 기준으로 체력평가를 하면 어떻게 하냐고. 사무실에 앉아서 하는 일만 할게 아니면 남자든 여자든 경찰을 하는데 충분한 체력을 갖춘 사람이 경찰이 돼야지."



최근 불거진 젠더 갈등의 문제는 아주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인 불만에서 시작됐습니다. 

차별의 역사를 제도로 극복하고자 했던 여성들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합니다. 남성과 동등한 수준의 처우를 받고 똑같은 목소리를 내기에는 아직도 개선하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이죠. 게다가 범죄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있는 여성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여전히 여성은 사회적 약자가 분명하다고 합니다.

남성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차별의 역사를 현재까지 소급해 오늘을 사는 남성들에게 책임을 무는 것은 역차별을 발생시킨다는 겁니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남자들은 자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는 영상(여성가족부  산하기관 영상물)까지 만들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합니다.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남녀가 아닌 인간으로서 대우하고 존중하자는 것은 이상적인 구호에 불과한 것일까요? 

남녀 간의 물리적인 차이가 권력관계로 이어지는 것은 절대 끊을 수 없는 걸까요? 혹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어 새로운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막을 수 없는 걸까요?


얼마 전 100분 토론에서는 이준석 국민의 힘 전 최고위원과 신지예 한국 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출연해 젠더갈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모 편의점 광고 포스터에 삽입된 손가락 이미지가 낳은 논란, 모 여성 개그우먼의 성희롱 논란 등으로 젠더갈등이 극에 달한 요즘, 그들의 토론이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한 제가 한심할 정도로 토론은 엉망이었습니다. 


이 난제를 풀 수 있는 뾰족한 수를 제가 알리 없습니다만, 페미니즘으로는 젠더갈등을 극복할 수 없으며 상대측의 문제제기를 젠더 프레임이라며 무시해서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상대는 무조건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때 느끼는 공포와 혐오를 극복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 있을까요? 

아이들이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고민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게, 유난히 참담하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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