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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y 27. 2021

메타버스로 가는 길

'김갑생할머니김 미래전략실 전략본부장 이호창'

이 직함만 들어도 웃음이 터집니다. 요즘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에서 개그맨 이창호가 선보이고 있는 부캐인데요. 이호창은 김갑생할머니김이라는 가상의 브랜드, 가상의 기업에서 본부장을 맡고 있으며 김갑생할머니의 손자, 즉 재벌 3세입니다. 이러한 설정의 세계관은 재벌 3세인 그의 일상을 몰래 찍어 올리는 형식의 영상들이 속속 올라오면서 확장됐지요. 매일 밤 잠자기전 아내가 낄낄거리며 들여다보는 영상의 정체가 궁금했던 남편 역시 이호창 본부장의 유니버스에 함께 빠져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메타버스, 메타버스 하길래 나도 좀 공부해봤었는데 감이 잘 안 왔었거든. 그런데 김갑생할머니김을 보면서 메타버스라는 게 가능한 세상이 오겠구나 싶더라."

"잘 모르겠지만... 김갑생할머니김이랑 메타버스는 좀 다른 개념 아닌가?"

"댓글 봤어? 댓글들이 모두 진심이야. 대중은 이미 그 사람을 독특한 재벌 3세로 인정하고 있잖아. 가상세계에서 자신들이 꿈꾸던 설정, 이상적인 인물을 현실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아."

"에이... 장난인 줄 다 알고 하는 거지~ 웃자고 만든 영상에 사람들이 죽자고 합세해서 진지하게 역할극 하는 것 같은데? 그게 너무 웃겨. ㅋㅋㅋ"

"그렇지. 모두가 시치미 뚝 떼고 그 세계관에서 놀고 있는 거지. 그런 게 일종의 메타버스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고. 영화 매트릭스에서나 보던 상황이 허무맹랑한 게 아니겠구나 생각이 들었어. "

"그렇겠네.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즐기고 있는 지금이 메타버스의 이전 버전일 수도 있겠다. VR이나 AR로 구현되는 가상현실 이전의 세계. 사람들은 메타버스에도 잘 적응해서 즐겁게 잘 살겠네."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메타버스'가 '김갑생할머니김' 놀이로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얼마 전에는 김 업체와 콜라보해서 '김갑생할머니김'을 생산해 예약판매를 했는데 완판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저도 살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죠. 피식 웃음을 주는 차원을 넘어서서 꿈인가 생신가의 수준으로 진입한 느낌... 


개그맨 이창호는 본부장 부캐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로 분하고 있으며 모두 성공적입니다. 개그맨 곽범과 함께 연기하고 있는 '매드 몬스터'라는 아이돌 그룹은 <내 루돌프>라는 음원까지 발매했고 포털에 검색하면 여느 아이돌 그룹 못지않은 프로필이 소개되어있습니다. '한사랑 산악회'라는 채널에서 보여주고 있는 상가번영회 부회장 이택조라는 부캐는 자체 인스타 계정이 있으며 홈쇼핑, 라디오 가리지 않고 바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상, 가짜 캐릭터에 대중 역시 자신의 부캐를 만들어 몰입합니다. 스스로를 팬클럽 회원이라는 부캐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어디선가 봤음직한 이택조라는 캐릭터에 빠져 댓글을 답니다. 김갑생할머니김 미래전략실 전략본부장에게 거는 기대와 동경을 숨기지 않습니다. 


이런 문화 현상 역시 코로나 19가 급하게 끌어온 우리의 미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방구석에 앉아서 게임이나 쇼핑 말고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

현실인 듯 현실 아닌 현실 같은 세상. 

유쾌하고 새로운 놀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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