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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l 18. 2021

밥이 아니어도 우리는...

"밥에 연연 좀 하지 마시기를..."

언젠가 올렸던 집밥 글에 달린 댓글이었다.

"유정씨는 애들 밥에 엄청 신경 쓰는 타입이네요~"

아이의 저녁을 챙기러 귀가를 서두르는 내게 지인이 한 말이었다.


그렇다. 난 밥에 연연하는 스타일이었다.

이 땅에 태어난 이유가 가족들 밥 해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음식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뭔가를 먹여야 내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늘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은 아니었다. 시켜먹는 것도 좋아하고 김치에 계란 프라이 하나로 때울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끼니에 대한 강박이 늘 따라다녔다.

저녁은 꼭 면이 아닌 밥이어야 하고 가능하면 고기가 있어야 하며 김치는 내손으로 담근 것일 것.

주말 가족 외식이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능한 한 평일 저녁은 집밥을 먹일 것.


핑계를 대자면, 잘 먹는 아들들을 둔 까닭이었다.

반찬이 부실해도 잘 먹는 작은 아들과 맘에 드는 반찬 앞에서 무장해제되는 큰아들. 그들은 학창 시절 내내 급식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적이 없다. 잔반이 다 뭐람? 맛있게 싹싹 먹었다. 학교에서 카레를 먹고 온 날 저녁 집밥 메뉴가 카레여도 한 그릇을 훌륭히 비워냈다. 먹는 걸로 속 썩여본 적 없는 아들들이다.

까탈스럽지 않은 아이들이었으니 집에서 아무 거나 해 먹여도 큰 부담이 없었다. 잘 먹고 잘 자라주니 흥에 겨워 더 해 먹였고 나로서는 크게 힘들지 않은 '강박'을 달고 산 셈이다.



입대를 앞두고 일주일 동안 아이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였다.

말하는 내가 지겨울 정도로 밥! 밥! 밥 거렸다. 정작 아들은 집에서 한 끼도 제대로 먹은 적이 없다. 집에 붙어있던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이치다. 아들은 새벽녘 겨우 잠만 자러 들어와 몇 시간 만에 또 나가버리곤 했지만 나는 그를 위한 음식을 했다. 혹시라도 "엄마, 밥 줘!"라고 할 것에 대비해 평소 좋아하던 것들을 준비해 놓았다. 준비한 음식은 나머지 식구들 몫이 됐다.

"치킨 시켜놓을까? 먹고 싶은 치킨 없어?"라는 물음에 평소 좋아하던 단짠 치킨을 시켜달라고 했지만 그마저도 몇 점 먹더니 나가버렸다. 남은 가족들만 포식했다.


그럼에도 또 물었다.

"입소날 아침은 집에서 먹고 출발할까?"

"입소 전 마지막 음식은 뭐 먹고 싶어? 점심에 뭐 먹을까?"

이쯤 되면, 내가 아들이라면 엄마한테 짜증 한 바가지 퍼부어줄 것 같다.

"밥 얘기 좀 그만해! 밥 얘기밖에 할 게 없어?"라고...


그런데... 밥 얘기밖에 할 말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학생일 때는 학교 이야기며 선생님 이야기도 곧잘 나누었다. 그게 누군가를 향한 분노이거나 방향 잃은 하소연일지라도 내 앞에서 늘어놓던 시절이었다. 밤에 모기가 괴롭힌 이야기며 사고 싶은 운동화 이야기, 급식에서 벌레가 나온 이야기, 행정실에 쳐들어가 에어컨 틀어달라고 따졌다는 이야기 등 내 앞에 쪼르르 와 시시콜콜 모두 이야기해주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대화는 밥상에서 오고 갔다. 잠시 잠깐 엄마와 얼굴 맞대는 그 시간에 과묵한 아들은 재잘거렸다. 잔정 없는 아들이 웃었다. 품 안의 자식이던 시절 얘기다. 그러니 밥에, 아들과 함께 앉는 밥상에 연연할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밥을 놓지 않고 있어야 아들과 이어진다고 믿었나 보다.


대부분의 끼니를 밖에서 친구들과 해결하는 아들은 서서히 집밥에서 멀어졌고 나에게서도 멀어진 것 같았다. 그게 당연한 수순이라고 인정했다. 그래야 하는 게 맞다는 것도 알았다. 다 큰 자식이 엄마 주변을 맴돌고 있으면 그것도 꼴사나울 테다. 그렇게 섭섭한 마음을 달래고 비워갔다.


이제 하루 뒤면 삼시세끼 군대밥을 먹게 될 아들.

군대와 전우가 그에게 가장 큰 세상이 될 테고 엄마와 연결됐던 세상과는 단절이다. 아이는, 학교급식을 맛있게 비워냈던 것처럼 짬밥을 세상 맛있게 먹어치울 것이다. 몇 달 후 휴가를 나오더라도 친구들 만나기 바쁠 테고 집밥보다는 치킨을 더 찾겠지.


이렇게 완벽한 단절을 눈앞에 두니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깟 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밥이 매개가 아니어도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는 관계였으며 밥상 앞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얼마든 행복한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서로를 헤아리는 깊은 마음을 나누었으며 떨어져 있다고 해도 우린 여전히 우리다.


첫 휴가를 나오면 난 으레 그랬듯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라고 묻겠지만, 그 물음은 이전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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