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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y 28. 2021

엄마가 섬그늘에 가더라도...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 섬집 아기 >


어릴 적 아이들에게 잠자리에서 불러주던 노래다. 처연하고 구슬픈 그 노래를 들으며 아이들은 꿈나라로 걸어 들어갔다. 잠드는데 효과적이어서 늘 불러줬는데, 지나고 보니 다른 노래를 불러줄걸 그랬다 싶다. 행복하고 밝은 꿈 꾸기는 글른 노래 같다... 


엄마는 굴 따러 가며 아이의 밥을 챙겨놨을까. 부엌 어딘가에 밥상을 차려 놓고 나왔겠지? 먹을 것을 찾다 지쳐 내내 잠만 자도록 놔둔 것은 아니겠지. 아니, 아기를 그렇게 혼자 집에 놔둬도 되는가...

혼자 배를 곯고 있을 아이 생각에 마음이 아렸던 시절이 있다. 아이를 그리 혼자 남겨두고 나갔을 엄마의 맘은 오죽했을까 서글프기도 했다. 


인생의 반이상을 전업주부로 살아오면서 가장 큰 숙제이자 고민은 '밥'이었다. 특히 새끼들의 '밥'에는 사활을 걸었다. 뜨신 밥, 맛있는 밥, 엄마가 해주는 밥에 대한 강박을 짙게 갖고 있었다. 

"당신은~ 밥해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개사해도 될 정도. 

주말에 온 가족 외식을 하는 경우 아니면 주중 외식이나 배달음식은 피했다. 김치 하나만 놓고 먹더라도 집밥을 챙겨 먹였다. 그게 도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5년 전부터 프리랜서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고민이 생겼다. 아이들에게 제때에 즉석에서 조리한 식사를 차려줄 수 없는 날이 간혹 생긴 것이다. 밥만 문제가 아니었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텅 빈 집안에 대고 '엄마~'를 불러야 하고 먹고 싶은 간식이 생겨도 참아야 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시렸다. 종일 나가 있어 끼니마저 챙겨줄 수 없는 날이 생기면 미안함과 죄책감은 배가 됐다. 그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밥솥 하나 가득 밥을 했다. 반찬도 이것저것 만들어놓았다. 냉장고에 이것저것 만들어놨으니 잘 챙겨 먹으라는 잔소리도 빼먹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밥솥이었다. 밥이 얼마나 줄었는지로 아이들의 하루를 가늠했던 것이다. 밥은 줄지 않았다. 아이들은 스스로 밥을 푸고 야무지게 반찬을 꺼내서 끼니를 챙기지 못했다. 밥 대신 컵라면이나 빵으로 허기를 채우거나 쫄쫄 굶기 일쑤였다. 귀찮아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몰라서 그랬다는 핑계를 늘어놓고는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깨끗이 비워냈다. 엄마의 부재를 '밥'에서 제일 많이 느꼈을 터였다. 


결국 내가 버릇을 잘못 들여서 생긴 일이었다. 차려주는 사람이 없어도 자신의 끼니는 챙겨 먹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했는데 말이다. 해결책을 생각해내야 했다.

제대로 챙겨 먹으라는 잔소리만으로는 해결이 안 됐다. 미리 상을 차려놓고 나가는 일도 문제가 많았다. 날이 더우면 상할 테고 시간이 지나면 말라비틀어진 음식을 먹어야 하니 말이다. 간단하면서도 배불리 한 끼를 챙겨 먹을 수 있는 일품요리들을 준비하게 된 배경이다. 


혼자서 얼마든지 차려먹을 수 있을 것.

큰 그릇 하나와 숟가락만 필요한 음식일 것.

고기가 잔뜩 들어갈 것.

반찬이 없어도 물리지 않게 먹을 수 있을 것.

이러한 조건을 생각해서 만들게 된 음식은 뻔하디 뻔한 것들이었다. 

돼지고기 김치찌개, 제육볶음, 카레...

가스를 켜서 데우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뜨끈한 밥 위에 얹으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큰 그릇에 담아 숟가락만 꽂아 식탁에서든 소파에서든 든든하게 속을 채울 수 있는 음식이기도 했다. 


뻔한 메뉴들 사이에 그나마 안뻔한 음식으로 '충무김밥'을 준비했다. 

김밥을 싸기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고른 메뉴였다. 흔히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보니 아이들도 별미로 생각해 잘 싸 먹었다. 데친 오징어를 양념에 버무렸고 무김치도 만들었다. 소금, 식초, 설탕에 고춧가루만 첨가해 무치면 제법 그럴듯한 무김치였다. 총각김치나 깍두기로 대체하거나 그마저도 없으면 단무지를 내놓았다. 구운 김도 잔뜩 잘라 통에 넣어두었다. 재밌어서 한번, 맛있어서 한번, 그렇게 싸 먹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먹게 되는 음식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급했다. 빨리 온다고 더 좋을 것도 없었다. 오매불망 엄마를 기다리다 격하게 달려들며 환영하는 녀석은 없었기 때문이다. 맹숭맹숭하게 "다녀오셨슈~"라는 인사말을 건네는 게 다였다. 그런데도 하던 일을 끝마치면 부리나케 달려왔다. 


집으로 돌아와 확인한 밥솥은 어느 순간부터 텅 비어있었다. 엄마 밥도 남기지 않았다고 야속해할 만큼 아이들은 싹싹 잘 챙겨 먹었다. 굴 따러간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큰 그릇에 밥을 고봉으로 담아 찌개에 말아서, 제육볶음이나 카레로 덮어서 배불리 먹었다. 김에 밥을 돌돌 말아 입에 넣고 오징어무침과 무김치까지 집어 먹으면서, 귀찮은 끼니 챙기기를 열심히 해주었다. 그렇게 엄마를 안심시켰다. 이젠 혼자서도 든든히 밥을 챙겨 먹는 수준에 이른 아이들이 기특했다. 섬집아기도 이제 더 이상 아기가 아니었다. 어느덧 다 커서 제 밥도 차려먹고, 엄마도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 나이가 됐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 섬집 아기 >



코로나로 1년 넘게 놀다가 5월이 되자 바빠졌다. 자원봉사지만 바빠졌다는 게 고맙다. 하지만 온라인 클래스 하는 아이 혼자 덩그러니 집에 남겨진 게 마음에 걸렸다.

지난 금요일엔 김치찌개, 이번 주 월요일엔 카레, 화요일엔 충무김밥, 수요일엔 제육볶음을 해놓고 나갔다. 돌아와서 밥솥을 열어보니 밥이 확 줄어있었다. 개수대에는 숟가락과 깨끗하게 비워진 큰 밥그릇 하나가 얌전히 놓여있었다. 엄마가 섬그늘에 다녀온 사이, 아이는 곤히 자다 일어나 학교 수업을 듣고 밥을 손수 챙겨 먹었던 것이다. 


언젠가, 엄마를 기다리며 잠들 아이가 더 이상 집에 없는 날이 오겠지. 갈매기가 아무리 울어대도 집에 가봐야 적막하기만 할 뿐이라 발걸음이 무거워질 날도 올 테고...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밥을 한솥 가득해놓고 찌개든 볶음이든 잔뜩 해놓고 길을 나서리라...'라고 다짐하다가, 다음엔 아무것도 준비해놓지 말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밥솥에 밥만 덩그러니 해놓아야지... 

냉장고를 뒤적거려 반찬도 꺼내고 햄도 구워 먹고 달걀도 부쳐먹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줘야지. 

그다음엔, 밥도 해놓지 말아야지. 라면도 모두 치워놔야지...

최종 단계는...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 아빠를 위해 밥도 해놓고 찌개도 끓여 놓는 경지.

언제까지 방바닥에 누워 자다 깨다 엄마만 기다리는 섬집아기로 늙어가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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