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작은 아이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습니다.
단순 두통이라고 생각해 진통제만 먹이고 넘어갔는데 어젯밤엔 얼굴을 중심으로 왼쪽 머리, 왼쪽 눈, 왼쪽 목의 통증을 호소했고 왼쪽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으며 미열도 났습니다. 왼쪽 이마에는 여드름 같은 것이 잔뜩 올라왔고요.
대상포진일까? 아이도 대상포진에 걸리나?
냉방병일까? 그러기엔 우리 집은 에어컨을 그렇게 심하게 틀지 않았는데?
코로나19 증상에 그런 게 있나? 며칠째 온종일 집에만 있었고 그 전에도 학원 외에는 다닌 적이 없는데?
자고 나면 나을까 했지만 오늘도 증상이 지속돼 병원을 찾아갔죠.
의사 선생님에게 그간의 증상을 설명했습니다. 혹시 대상포진이 아닌가도 여쭸지요.
선생님은 아이의 입을 들여다보고 눈을 보고 이마를 한번 보더니 아이와 저를 번갈아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결막염도 있고 목도 살짝 부었어요. 뭐 요새 스트레스받고 힘든 거 있었니? 면역이 많이 떨어졌네요? 비타민 수액 하나 맞고 가는 게 좋겠어요."
병원의 상술이든 뭐가 되었든, 지친 아이에게 위로라도 될까 싶어 수액을 맞히고 돌아왔습니다.
"OO아... 많이 힘들어? 스트레스 많이 받아?"
"그냥 뭐..."
"어떤 게 제일 힘들어?"
"다 힘들어. 세상만사가 다 스트레스야."
이럴 때 엄마 마음엔 무언가 '쿵' 떨어집니다.
방학 동안 부족한 과목을 보충하자고 등록한 인강이 부담이었을까, 지난밤 OO대학교 멘토링 캠프를 해보는 건 어떠냐는 엄마의 제안이 이 사단을 만들었을까, 시간 날 때 책을 좀 읽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 듣기 싫었을까.
"너 지금 잘하고 있어~ 너무 애쓰고 힘들이지 마~"
"..."
"인강을, 왜 그렇게 몇 과목씩 몇 시간 동안 들어~ 국어랑 과학 한 과목씩만 들으면 되지. 수학은 잘하고 학원도 다니는데 뭘 또 들어? 미적분은 3학년 과목이니까 올 겨울방학 때 학원에서 다시 해줄 거 아니야."
"2학기 때 수 2를 쉽게 풀으려면 미적분을 활용하는 게 수월해. 지금 들어놔야 해..."
수 2가 뭔지 미적분이 뭔지 모르는 저는 뭔 말인지 알 길이 없지만 하루 한 시간만 듣자고 등록한 인강을 적게는 두 시간, 많게는 세 시간씩 듣고 있는 아이가 딱하기만 했습니다.
"OO아. 너무 힘주며 살지마. 몸에 힘 빼고 자신을 달달 볶지 마~"
"성격이라 어쩔 수가 없나 봐. 그래서 형이 부러워."
"형?"
"형처럼 편하고 즐겁게 사는 거."
"형이라고 고민이 없고 세상만사 하쿠나 마타타는 아니었지. 다만 그걸 해소하는 자기만의 방법을 열심히 찾아다닌 거야. 그러니까 너도 그런 걸 찾아봐."
"게임하잖아."
"엄마가 너 많이 달달 볶니? 엄마 때문에도 많이 힘들어?"
"하하하. 뭐. 그냥...."
"아니지는 않나 보구나?"
'스스로 알아서 하기를 지켜보는 엄마, 기다리는 엄마'라는 건 그저 저만의 상상이었나 봅니다. 어떤 게 괜찮은 엄마의 정답지인지는 알고 있으니까요. 정답을 아는 것과 내가 어떤 엄마인지는 다른 건데 그걸 착각했습니다.
조바심이 났지요. 나의 기다림이 무관심으로 비치지는 않을까, 나중에 원망하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했습니다. 워낙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라서 싫은 건 싫다고 말하는 아이였지만, 동시에 마음이 여린 구석이 있어서 엄마 눈치도 많이 보는 아이였습니다. 자신의 거부, 거절이 엄마에게 상처가 될까 고민했을 겁니다.
결국, 아이가 느끼는 압박에 저도 일조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게 정확히 뭔지, 저의 어떤 말, 어떤 행동인지를 모르는 게 문제입니다.
한숨 자라는데도 아이는 패드를 열고 인강을 듣습니다.
아이가 가진 불안, 중압감이 얼마나 큰지... 감히 알 수가 없습니다.
전화로 아이의 소식을 들은 남편이 한마디 합니다.
"그런 애를 당신은 왜..."
"나? 내가 뭐?"
"아니다..."
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다들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합니다.
그런데, 제가 뭘 어쩌기는 했나 봅니다.
이유를 찾지 못하겠지만 자책과 원망은 온통 저의 몫입니다.
뭘 어쩌기는 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