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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ug 13. 2021

압박 면접

10여 년을 알고 지낸 지인이 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제법 크고 명망 있는 속기사 사무소를 갖고 있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내가 아는 지인 중 제일 통이 크고 마음도 넓은 사람이다. 제일 부자인 것 같기도.


큰 아이의 같은 반 학부모로 시작된 그녀와의 인연은 동네 아는 언니 동생으로 이어졌다. 한때 그 언니의 아들이 우리 치킨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고 기특한 당신의 아들을 보러 우리 가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인물이다. 매일 매상을 올려주는 것도 모자라 내가 만든 떡을 수시로 주문했다. 여기저기 선물할 때가 많다고 했지만 그냥 주문한 적도 많을 테다. 


나에게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옥수수를 재배하는 지인에게서 잔뜩 주문한 옥수수를 이 사람 저 사람 나눠주고 카페를 오픈한 지인이 있으면 소문내고 사람들을 우르르 이끌고 갔다. 맛있는 간식 집을 한 군데 발견하면 질려서 못 먹을 때까지 사 먹고 돌리기를 반복했다. 그 언니와 친하게 지내는 내내 콩고물이 많았다. 


그랬던 그녀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심장마비였다. 샤워를 하러 들어간 남편이 감감무소식이어서 들어가 보니 이미 때를 놓친 후였다. 대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을 남겨두고 떠난 남편.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함이었을까. 언니는 다단계를 시작했다. 전문직에 종사하며 자신의 사업체를 갖고 있었지만 오래 해온 일이라 재미도 없고 알아서 굴러가니 바쁠 일도 없다고 했다. 새로운 일을 배우고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언니에게는 숨구멍이자 신세계였을 게다. 


워낙 인상이 좋고 인심이 남달랐으며 인맥이 풍요로왔으니 언니의 네트워크 마케팅 사업은 승승장구였다. 발을 들인 지 2년 만에 가장 높은 단계에 올라갔다. 거기서 판매하는 화장품을 열심히 바르고 관리한 덕이겠지만 얼굴에서는 광이 났고 이전보다 훨씬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다. 아니, 언니 쪽에서 주기적으로 만남을 요청했다. 


만날 때마다 언니는 당혹스러우며 명확하게 답을 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내가 답을 말하기도 전해 미리 준비한 답을 술술 말해주었음은 물론이요, 순간 정색을 하며 "그래서 유정아!"라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그러면 나는 그게 너무 웃겨서, "언니, 난 언니가 그렇게 정색하며 날 부를 때가 제일 웃겨요~"했다. 


"행복하니?"

맥락 없이 훅 치고 들어온 질문이었다. 단숨에 "네~~ 그럼요~ 너무 행복하죠~"라는 말이 안 나왔다. 순간의 기쁨과 순간의 슬픔들을 모아 계산한 값으로 답해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행복이란 꽤 가변적인 거 아닌가? 그냥 지금 현재 내 기분을 묻는 건가? 아무 느낌 없는데? 

"어...."라고 말을 늘어뜨리며 시간을 끄는 내게 언니는 말했다. 

"난 요즘처럼 행복한 적이 없는 것 같아. 예전엔 몰랐거든? 그냥 그 정도면 행복한 삶이다 생각했는데 이 일 시작하고부터는 늘 마음이 설레고 행복해. 그래서 유정아! 당장 이 일을 시작하라는 게 아니야. 늘 염두에 두라는 말이야. 언니가 이렇게 권했다는 걸 항상 새기고 있으라고."


다단계, 언니의 권유는 기억에 새겨지지 않았다. 언니가 던진 질문, 행복하냐는 질문에 왜 내가 선뜻 대답하지 못했는지만 생각났다. 행복이란 뭘까? 행복하다고 답할 근거들은 뭘까?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닌데 왜 난 행복하다고 답하지 못한 걸까? 



"너, 바쁘니?"

다음에 만났을 때는 밑도 끝도 없이 바쁘냐고 물었다. 오늘 바쁘냐는 건지, 요즘 바쁘냐는 건지, 삶 자체가 바쁘다는 건지를 생각하며 또 "어...." 해버렸다. 이번에도 언니는 답을 가로챘다.

"있잖아. 바빠야 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 지금 코로나로 우리 강남의 다단계 사무실도 다 빼고 그랬거든. 사람도 잘 못 만나고? 그런데 줌이라는 걸 통해 사람도 만나고 뭐든 다 할 수 있다? 아침마다 매일 독서토론도 하거든? 그걸 1년째 매일 하고 있는데 모두가 성장하는 게 보여. 코로나 때문에 뭘 못한다는 것도 다 핑계인 세상이 된 거지. 그래서 유정아~~~"


나? 바쁠 땐 바쁘고 한가할 땐 한가한데? 어떤 날은 하루 스케줄이 빽빽해서 밥 먹을 시간도 없지만 어떤 날은 종일 유유자적하기도 한데? 날마다 다르고 달마다 다른데? 그걸 바쁘다고 해야 하나 아니라고 해야 하나? 

사람들은 보통 어떤 걸 바쁘다고 하지?



"한 달에 얼마 정도 벌면 아무 걱정 없을 것 같니?"

2주 전쯤 만났을 때 언니는 내게 딱 한 시간을 할애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구입한 옥수수를 나눠주었고 서로의 소소한 일상을 나누었다. 호재의 입대 소식에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나누었으며 호재와 동갑인 그녀 딸의 근황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누었다. 그러다가 언니가 훅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한 달에 얼마 벌면 돈 걱정 안 하고 하고 싶은 거 누리면서 살 수 있을지...

막연했다.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질문보다도 구체적이고 명확한데 답은 역시 어려웠다. 


"예전에, 우리 남편 살아있을 때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나니? 기억하지? 집안일해주는 이모님 계시고 둘째 아이 영어 선생님으로 필리핀 선생님이 우리 집에 같이 살았잖아. 뭐가 맛있다 그러면 물릴 정도로 사다 먹었지. 해태인가 크라운인가 본사에 전화한 적도 있었어. 어떤 과자 몇 박스 사겠다고 보내달라고. 큰애 용돈도 개념 없이 줬었고 돈이라는 거에 구애받지 않고 살았어. OO아빠가 그때 나한테 한 달에 준 생활비가 얼마인지 아니? 3천이야. 놀랍지? 내가 매달 3천씩을 쓰고 살았던 거야. 저금 뭐 이런 건 하지도 않았어. 그 돈이 끊길 거라고 생각을 못한 거지. 그러니 남편 죽고 내가 얼마나 힘들었겠니? 그런데 있잖아, 내가 다단계 한지 딱 5년 정도 됐거든? 이제 그 3,000 고지가 보여. 그 정도면 매달 무슨 걱정 하면서 살까 싶은 3,000말이야. 물론, 이 일을 시작하고 바로 그렇게 된다고 절대 말할 수 없어. 시간과 노력을 나만큼 들여야 해. 그런데 넌 할 수 있을 것 같아."


3,000만 원

그 돈이 있다면 아무 고민과 걱정 없는 매일이 펼쳐질까?

그거면 나를 성장시키느라 바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러면 난 행복할까? 

그때쯤이면 언니의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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