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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ug 21. 2021

너도 나도 내려놓자.

수포가 심해 볼 때마다 엄마의 안쓰러움이 폭발하게 했던 작은 아이의 대상포진은 다행히 개학 전에 회복이 되었다. 진물이 줄줄 흐르던 수포는 일주일 만에 딱지를 만들며 꾸덕해지더니 이제는 맨질맨질한 살로 돌아왔다. 변색이 되어 울긋불긋한 피부는 두어 달에 걸쳐 서서히 회복된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왼쪽 눈 흰자는 시뻘겋게 충혈이 되고 그나마도 퉁퉁 부어 뜨지 못하던 발병 초기, 모든 것을 중지시켰다. 영어 수학 학원은 당연하고 방학 시작과 동시에 매일 듣던 인강도 멈췄다. 90일 동안 매일 한 시간 이상 들으면 세금을 제외한 전액을 환급해주는 요금제였다. 아이는 20여 일을 꼬박꼬박 하루 두 시간가량 들어왔다. 그래 봐야 세금 제하면 15여만 원을 돌려받는 거였지만 아이는 자신에게 도전이라도 하듯 꾸역꾸역 인증을 해왔던 것이다. 

같은 프로그램에 등록했던 동네 지인이 "너무 아깝다... 듣지 않더라도 그냥 틀어놓고라도 있으라 하지 그랬어."라며 아쉬워했다. 

"나도 그럴까 살짝 고민은 했지. 15만 원이 적은 돈도 아니고 며칠만 내가 들어가서 틀어놓을까 생각은 해봤는데... 양심에 찔리더라고. 듣지도 않으면서 틀어놓고 환급받는 게 찔리는 게 아니라, 아이를 걱정했던 내 마음의 진정성이 퇴색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이 앞에서는 속상해하고 걱정하며 학원을 다 끊어놓는 엄마였다가 뒤로는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인강 틀어놓는 엄마라면 아이 마음이 찝찌름해질 것 같았어. '나는 이렇게 아픈데 엄마는 돈 생각밖에 안 하는구나.'라고 생각할까 봐..."

온전히 아이의 빠른 회복에만 집중하는 엄마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인강 인증제를 과감히 포기해버린 나였다. 하루 여섯 번 발라주라던 항바이러스 연고를 성실히 발라주었고 하루 네 번 넣는 안약도 시간 맞춰 넣어주었다. 면역력을 높이는 식사를 준비해주었고 상처가 덧날까 봐 에어컨을 풀가동한 거실에 이부자리를 펴주고 거실에서 함께 생활했다. 


그런데 사람이란 아니 나라는 사람은 화장실 갈 때 마음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말을 충실히 따르는 존재였다. 

휴식에 들어간 지 일주일이 지나며 아이의 눈이 제대로 떠지고 상처가 회복되었다. 무료했던 아이는 종일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았다. 거실에 펼쳐놓은 이불에 들어가 종일 TV를 보고 패드를 펼쳐 게임을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본격적으로 게임을 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저렇게 한없이 놀아도 되나? 저러다 공부에 흥미 잃고 아예 접는 거 아닐까? 텐션이 떨어진 게 아니라 끊어진 건 아니겠지?'

그러면서도 아이에게 내색을 하지는 못했다. 아이는 '나 아픈 사람이야~'라는 온갖 유세에 푹 빠진 듯 보였기 때문이다. 부모의 온갖 관심이 자신의 건강에 쏠려있는 이 상황을 한껏 즐기고 있는 아이의 눈치가 보였다. 


개학 전날, 이제는 남편도 슬슬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나를 붙잡고 얘기했다.

"개학하면, 다시 자기 페이스를 찾겠지? 솔직히 저렇게 게임만 하고 있으니 불안하기는 한데 난 아이를 믿으니까 기다려보려고. 내일 개학하고 나면 평소처럼 자기 할 일 알아서 잘하리라 믿어보려고."


상처는 아물었고 방학은 끝났다. 아이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일상을 회복했고 인강도 다시 듣기 시작했다. 떨어진 체력 때문에 힘들까 봐 준비한 홍삼을 아침마다 챙겨 먹으며 등교를 하고 숙제를 했다. 

그러던 중 예약된 대학병원 진료가 방과 후가 아니라 6교시 이후 조퇴를 하고 가야 하는 시간임을 확인했고 아이는 당황했다. 

"아... 학교 빠지고 병원 가는 건 좀 그런데... 난 다른 건 몰라도 3년 개근상이 꼭 타고 싶어. 간지 폭발이잖아."

그랬다. 요즘 고등학교에서 3년 개근은 전체 학생의 10% 정도 탈까 말까 한 상이 되었다. 졸업식날 국회의원상, 교육감 상등은 교장실에서 따로 수여하지만 개근상은 졸업식장에서 모든 학생이 모인 가운데 수여한다. 그만큼 가치 있고 의미 있기 때문이다. 나 때는 3년 개근을 못 타는 아이가 그 정도 될까 했는데 말이다. 아이는 그 상에 욕심을 내고 있었다. 자신의 성실함을 성적보다는 개근상으로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고민도 깊어졌다. 나 역시 아이의 3년 개근을 바랐다. 큰 아이 때도 3년 개근을 목전에 두고 체대 실기학원을 다니는 바람에 좌절되었던 터라 작은 아이만이라도 달성하고 싶었다. 

"게다가 7교시가 중국어야. 우리반에 중국어 필기하는 애 아무도 없는데..."

"그럼, 엄마 혼자 병원에 갈게. 이번엔 MRI 결과랑 망막 사진 촬영한 것 이상 없는지 보러 가는 거니까 엄마만 가도 될 것 같아. 혹시 환자 본인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 다시 예약을 잡고 오면 되지 않을까?"


3년 개근에 집착한 모자의 결정은 다음날 아침 번복되었다. 아이의 눈이 다시 충혈되어있었고 가만히 있어도 머릿속이 너무 가렵다는 아이의 말에 우리 가족 모두 개근상 포기에 합의했다. 

그깟 3년 개근이 뭐란 말인가. 불과 2주 전 건강이 최고라며 학원이고 뭐고 건강부터 살피자고 호들갑 떨던 우리였는데 말이다. 


넘어진 김에 쉬던 아이는 여전히 입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신이 정해놓은 원칙을 고수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완전한 쉼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나 역시 아이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놓겠다고 했지만 욕심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다. 


조퇴를 하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 오히려 홀가분했던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오늘 인강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이럴 수가... 아이는 아픈 와중에도 인강을 듣고 있었다. 오히려 병이 다 낫고 난 후 3일간 인강을 쉬었다. 

아이는 그제야 내려놓을 수 있었는가 보다. 


8월 2일부터 아파 누웠던 2주동안에도 꾸준히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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