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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ug 07. 2021

우리는...

나란 사람은,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가는지 관심 두지 않는다. 내비를 무시하고 가다가 삥 돌아가든지 말든지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옆에 앉은 나를 보기가 민망해 "아휴, 오늘 내가 왜 이러지? 그냥 내비 말 들을걸..." 하더라도 난 암씨롱도 않으니 상관 말라고 달래준다. 마음이 한없이 넓어서가 아니다. 애초에 관심이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운전한 사람이 알아두었겠지 생각하며 정신줄을 내려놓는다. 나중에 주차한 자리를 찾아 헤매더라도 크게 괘념치 않는다. 어디에 주차했는지를 챙기지 못하는 것은, 챙겼더라도 까먹는 것은 내가 운전대를 잡아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차장만 내려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을 매일 무한 반복하는 내가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등산을 가거나 산책을 가도 그렇다.

함께 가는 사람에게 모든 걸 의지해버린다. 나중에 상대가 길을 잃고 내게 "너는 알지?"라고 지원 요청을 해도, "헤헤헤, 내가 어떻게 알아?"라며 무책임한 표정을 드러낸다.


친한 지인들과 고스톱을 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모여하는 고스톱은 돈내기가 아니다. 이길 필요가 없다는 얘기. 그러니 맘대로 친다. 늘 못 먹지만 고를 외치고 모두가 만류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상대의 패를 읽기는커녕 훤히 드러난 상대의 전략도 살피지 않는다. 그저 함께 하는 게 즐거운 나머지 정신줄을 놓고 만다.

오죽하면 '바보'라는 소리를 듣겠는가. 그저 헤헤헤헤 웃으며 아무 생각 없는 사람. 그게 나다.


어제 올림픽 여자 배구 대표팀의 경기를 볼 때만 해도 그랬다.

그냥 봤다. 아무 생각 없이.

남편이 옆에서 "우리 선수들은 백어택이 안되네..." 하는데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런 게 있나보다였다. 남편이 "백어택이 뭔 줄 알아?"라고 묻는데 당당히 "아니? 뭔데?"라고 물었다.

"선수들 각자 위치가 있고 그걸 지켜야 되는 건 알지?"라고 물었는데, "그렇... 겠지?"라고 자신 없게 말했다. 솔직히 몰랐다. 그냥 봤던 거다. 상대가 우리의 공을 못 받아치면 실점, 우리가 상대의 공을 잘 막아내면 득점. 이렇게만 알고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만 갖고 응원을 했다.

남편이 봤을 때 얼마나 기가 막혔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어떻게 룰도 모르면서 경기를 보고 응원하지? 했을 것이다.


그게 나란 사람이다.

나사가 빠져도 한참 빠진 사람. 아무것도 모르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

의지할 누군가가 있는 순간 모든 걸 내려놓는 사람. 무책임한 사람.


그런 내가 정신 바짝 차리는 순간이 있다.

모두가 나만 바라보는 상황이 될 때다.

가르치는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만 바라볼 때, 처음 봉사를 나가는 선생님들이 어찌할 바 몰라 하나부터 나에게 의지할 때, 낯선 이들 앞에서 강연을 할 때. 최대한 전문가다운 포스를 뽐내며 버텨낸다.


또 다른 경우는, 아이를 곤경에서 구해낼 때다.

대상포진으로 눈이 퉁퉁 부어 앞을 보기도 힘든 아이를 끌고 대학병원을 찾았다.

간호사가 말해준 동선대로 한치의 오차 없이 움직였다. 피부과, 수납, 안과, 검사, 수납, 채혈, 다시 안과로 가는 동선을 이정표를 놓치지 않고 봐 가며 그대로 따랐다. 의사나 간호사 앞에서도 지 않고 물어야 할 질문을 모두 다 말했다.

처음 방문한 병원이라 응해야 하는 문진에서도 프로페셔널하게 답했다.

"어머니, 아이 몇 주 차에 낳으셨어요?"

18년 전 일을 갑자기 물어왔다.

"41주 차요."

"몸무게는요?"

"4.06kg이요."

"태어났을 때 어디 아프거나 했던 적은요?"

"신생아 황달로 입원했어요."

자판기 누르듯 술술 나왔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주차장 위치다.

약을 타러 가던 중 아이는 힘들다며 차에서 기다리겠노라 했다. 그러면서 "차 어디 있어?"라고 물었다.

"지하 3층 C12"

내가 말하고 내가 놀랐다. 정확히 기억해내다니... 지하 2층인지 3층 인지도 기억 못 하는 내가 말이다.


'모성의 위대함' 같은 시대착오적이고 고루한 가치를 설파하기 위함이 아니다. 절박해지면, 누군가 나만 바라보는 책임감의 무게를 느끼게 되면 내가 가진 능력치가 한없이 올라가는 사람임을 만천하에 고하고자 함이다.

평소에는 어눌한 말투에 빙빙 돌아가는 안경을 쓰고 주어진 일을 겨우겨우 해내는 사람이지만 위급한 상황, 모두가 나에게만 의지하는 상황이 되면 안경을 집어던지고 활동이 편한 옷으로 재빨리 갈아입는 슈퍼맨처럼, 나 역시 변할 수 있음을 알리고자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절박해도 고스톱에서 이길 자신은 없으며, 다음 올림픽때 룰을 숙지하고 배구를 관람할 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런 사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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