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스파이크했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신나서 이야기합니다.
"스파이크? 배구했어?"
"그런데 15대 14로 졌어. 마지막 공격만 성공했어도 이길 수 있었는데 아깝네."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10대 5였는데 따라잡은 거야. 듀스 없이 해서 그냥 끝나버렸지."
"오올~~ 대단한데?"
"스파이크하려고 뛰어올랐는데 공이 저~ 위에서 안 내려오더라? ㅋㅋㅋ 그래서 공격 실패했지. 푸하하하"
작은 아이가 학교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신나게 떠들었던 게 언제였더라... 까마득합니다. 아마 코로나 이전이었을 테죠. 고입 이후로는 저렇게 신나게 떠든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써야 하고 자리 이동이나 여럿이 뭉쳐 있는 게 제한되며 세 면을 막아놓은 투명 가림막 안에서만 생활하는데 특별할 일이 있을 리가 있나요. 게다가 작년부터 3학년은 매일 등교, 1, 2학년은 교차 등교를 하고 있으니 적응할만하고 재미있을만하면 온라인 클래스로 일주일을 보냅니다. 맥이 끊어질만합니다. 학교 가는게 점점 귀찮은 일이 되고 말이죠.
거리두기 4단계가 연장되면서 학교는 등교 일정을 고심했습니다. 고등학교는 학생 3분의 2 등교와 전 학년 등교 사이에서 학교장 재량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데,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요. 학생, 학부모, 교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학생과 교직원은 압도적으로, 학부모는 과반수를 웃도는 수가 교차 등교를 지지했습니다. 당분간은 1, 2학년이 격주로 등교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죠. 결국 추석 연휴 때까지 당분간 교차 등교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수시 원서를 쓴 고3 학생들이 수능 공부를 위해 가정 학습을 쓰면서 등교를 안 하는 9월 말이 되면 1, 2학년 전면 등교를 다시 논의해보자고 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전면 등교를 싫어합니다. 이미 격주 등교의 맛에 빠져버린 거죠. 원래, 학생은 학교 가기 싫어하고 직장인은 회사 가기 싫어하는 법이니 그들의 거부에는 힘이 실리지 않습니다. 학교의 주체는 학생이라도 말이죠.
학부모들의 의견은 반반으로 갈립니다. 생활습관과 학업 루틴이 깨져버리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매일 등교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지금처럼 한주는 집에서 편히 수업 듣는 것이 체력적인 부분에서 나쁘지 않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방역'이라는 이유는 살짝 뒷전으로 밀려난 분위기...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쫑알쫑알 전하는 체육시간 이야기를 들으니 한참 동안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의 의미'를요.
공부만 하라고 보낸 게 아니었습니다. 하루를 알차고 즐겁게 지내라고 보낸 거였죠. 배구도 하고 친구들이랑 밥도 먹고, 신경전도 벌이고 별것 아닌 일에 까르르 웃기도 하라고요.
올림픽에서나 보던 배구를 직접 하며 "식빵"도 외쳐보고 그 김에 친구들과 한바탕 웃기도 하면서 말이죠.
큰아이가 했던 것처럼 몰래 담배도 피우고 월담도 하면서 학창 시절의 낭만을 만끽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큰 아이는 걸리지만 않았지 수많은 추억을 쌓았다며 무용담을 늘어놓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들었지요. 지 애미를 똑 닮아서는 원....
어쨌든, 이제는 학교와 등교의 정상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기 아닐까 합니다.
'상대의 표정을 보고 감정 읽는 훈련을 하는 시기인 유아기의 아이들이 마스크 때문에 그 중요한 시기를 놓쳐 성인이 되었을 때 정서적 문제를 겪을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한 전문가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비단 유아들의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학창 시절을 놓친 아이들이 혼자 먹고 노는 것에 익숙해져 타인과의 교류를 귀찮아하고 겁내 하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어쩌면 먼 훗날, '코로나 세대'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세대가 나타나지 말라는 법도 없겠지요. 상대의 감정에 관심 없고 방에 혼자 틀어박혀 메타버스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세대. 바이러스로부터는 자유로울지 모르나 인간으로서 누릴 다른 가치는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세대 말이에요.
아이가 쏘아 올린 배구공 하나가 여전히 떨어지지 않은 채 허공에 매달려있는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