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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06. 2021

긴 싸움의 끝

입방정을 떤 대가는 가혹했다. 

< 학교에 매일 가야 하는 이유 >라는 글을 올린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작은 아이와 같은 학년에서 확진자가 나온 것이다. 다음날인 일요일, 작은 아이는 능동 감시자로 분류되어 검사 통보를 받았다. 


생명과학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오늘 내로 검사를 하라는 학교의 문자를 아이가 확인한 것은 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일요일이라 선별 진료소는 이미 문을 닫은 후. 다음날 일찍 검사를 받아도 된다는 담임 선생님의 답이 있었지만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알아보았다. 

검색 끝에 용인 고속도로휴게소 인천방향 임시 선별 검사소가 9월 말까지 운영된다는 것을 알아냈고 오후 8시까지라 시간은 넉넉했다. 왕복 1시간 거리라 망설였지만 아이는 만주 냄새라도 맡으러 가자며 길을 재촉했다. 


날은 흐렸지만 바람은 좋았다.

나무는 아직 푸르렀으며 숲은 울창했다. 선별 검사소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위치해 있으니 당연하게도 용인 IC에 들어서는데, 아이와 나는 그제야 알았다. 코로나 이후, 주말에 우리가 고속도로를 타고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형이 입대한 날 온 식구가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고속도로를 타기는 했지만 그날은 월요일이었고 길이 뻥뻥 뚫렸다. 일요일에 입구부터 꽉 막힌 영동고속도로에 들어선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이게 고속도로지~ 고속으로 가면 고속도로가 아니여~ 이런 게 여행 가는 맛인디. 쩝!"

사투리까지 써가며 말을 건넸지만 아이는 씁쓸하게 웃고 말 뿐이었다. 


이미 여러 번 코를 쑤셔봤던 아이는 담담하게 검사를 마치고 차로 돌아왔다. 예전에 검사했을 때보다 더 깊숙이 쑤시더라는 말을 하며 심드렁했다. 아이가 검사를 받는 동안 냉큼 뛰어가 사온 만주 한봉을 건넸다. 금세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만주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아이는 말했다. 

"만주는 냄새가 다한다. 먹으면 별맛 아닌데."

그러면서도 연신 집어먹는 모습에 나는 안도했다. 여러 번 검사해봤다고 해서 걱정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표현은 안 하지만 이 상황이 얼마나 짜증나고 답답하며 두렵겠는가.


네비는 에버랜드 옆길을 경유하는 코스로 집을 안내했다. 

"여기 에버랜드 가는 길 아니야?"

어려서 제 집 앞마당 드나들듯 했던 곳이라 익숙했나 보다. 우리는 창을 잔뜩 열고 나무 내음을 실컷 들이켰다. 흡사 여행에서 돌아오는 여행객 같았다. 코로나 검사 따위는 이제 암시롱 않은 이벤트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비장하게 말했다.

"KF94 마스크만 써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했고, 가림막 하라고 해서 철저히 지켰고, 하라는 대로 다 했으니 난 절대 걸릴 일이 없어!"

교내 감염은 나온 적이 없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근거 없는 안일함이라기보다는 개인 방역의 힘을 믿는데서 오는 자신감이다. 아이 역시 철저했던 자신을 믿었다. 



아이의 학교는 작년 8월과 10월 두 번에 걸쳐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공중파 뉴스에도 등장할 만큼 유명세를 치렀다.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게 흔치 않던 때였지만 언론의 유난한 관심을 받았던 것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시 1학년 전체가 검사를 했다. 걱정 가득했던 부모들은 아무 정보가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학부모회장인 내게 묻고 또 묻는라 밤을 새웠다. 학교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학부모들과 최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대처했다. 다행히 교내 전파는 없었고 2주간의 자가격리 후 아이들은 격주로 등교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몇 번의 홍역을 치른 탓일까, 이번에는 고요하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개인 메시지가 일절 없다. 학교에서 신속하게 소식을 알리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이 상황에 무뎌진 게 비단 나뿐만은 아닌가 보다. 


하지만 이 사달이 났으니 당분간 전교생 매일 등교는 또 저만치 도망친 게 아닐까... 

"이제 아이들을 생각해서 정상 등교를 해야 해요. 생활이 말이 아니라고요!"라고 목소리를 내던 학부모들도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에는 입을 뗄 수가 없다. 언제까지 계속 이렇게 웅크리고 있을 거냐고 묻지만 그 '언제까지'를 대체 누가 무슨 기준으로 결정할 수 있겠는가... 다시 꺼내기 조심스러운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제 좀 괜찮아진 것 같은데 활동을 좀 시작해볼까?' 하며 기지개를 켜면 어느새 무언가가 와서 툭 시비를 거는 모양새가, 달팽이 놀음 같다. 


비가 촉촉이 내리던 어느 날, 화단에 우산을 받치고 앉아 지나가는 달팽이에게 시비를 걸던 기억이 난다. 

느리지만 성실하게 제 갈길 가던 녀석의 더듬이를 톡 치면 세상 소심하게 온 몸을 움츠리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달팽이와 나의 내기가 시작됐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의 술래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기라도 하듯 미동도 하지 않고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단기전의 승자는 언제나 나였다. 생각보다 성격이 급한 달팽이는 다시 더듬이와 목인지 몸통인지 모를 것들을 쑥 내밀며 다시 전진했다. 그러면 난 참 못된 어린이라 1보 전진도 허락하지 않고 다시 건드렸다. 영원히 나만 이길 것 같은 싸움, 달팽이 입장에서 보면 승산이 없어 보이는 전쟁이었다. 그러다 차츰 달팽이의 반응이 재미없어진다. 크게 놀라는 것 같지가 않다. 흥미 잃은 내가 잠시 딴 데 한눈이라도 팔면 달팽이는 '열라 빠른 달팽이'가 되어 순간 이동이라도 한 듯 흔적을 감췄다. 


순간 훅 날아오는 공격에 우리는 휘청이고 정신을 잃기도 하고 몸이 움츠러들겠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천천히 발을 뗄 것이다. 그러기를 몇 번 하다 보면 '에잇, 별것 아닌데?' 하며 심드렁해질 때가 올 것이다. 상대가 잠시 한눈이라도 팔면 그때 우리는 미친 듯이 진군할 것이다. 

이 긴 싸움의 승자는 결국 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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