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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25. 2019

D-100 프로젝트
< D-65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오늘 저녁은 뭐 할 거야?"

매일 오후 3,4시만 되면 지인들과 서로에게 묻는 고정 질문이다. 

주부의 일상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끼니'가 아닐까 싶다. 일하는 여성이건 전업주부이건 간에 식사에 관한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손수 만든 음식이든 반찬가게에서 공수하는 음식이든 고민의 시작점은 같다. 

이런 고민에 대한 가족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그냥 있는 거 아무거나 먹자~"

'있는 거 아무거나'가 제일 어려운 메뉴인 줄을 모른다.


미친 듯이 저녁을 차린 후 지쳐버린 지인이 단톡 방에 올린 질문과 나의 답...

언젠가 친한 지인이 단톡 방에 질문을 올렸다.

"내는 배 터지는데.. 왜?? 왜?? 저녁을 해야 하는지 누가 말해줘요ㅠ"

"내배 불러 낳았으니까..."가 나의 답이었다. 


내가 배부를 땐 정말 하기가 싫은 게 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밥 한 끼를 기대하며 귀가하는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 밥이 무슨 여자만의, 엄마만의 의무냐며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에서 '밥'은 여성의 숙제인 것이 현실이다. 


결혼이라는 걸 하는 순간, 아이를 낳는 순간에는 눈앞에 펼쳐질 현실들을 가늠하지 못했다. 

'엄마'와 똑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고민도 없었다. 

삼시세끼 밥과 반찬을 고민해야 하는 삶.

배고프면 나부터 찾는 이들이 있는 삶. 

'어머니'라는 이름에 무한한 희생과 사랑을 강요하며 그걸 충족시키지 못하면 죄책감이라는 무언의 굴레를 씌우는 삶.

적어도 나는 다른 삶을 살 것이라고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82년생 김지영'이 여전히 여성들의 맘에 공감과 울림을 주는 걸 보면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살림은 '나'의 몫이고, 다른 가족들에게 그것은 '가끔 도와주는 일'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한 삶이기에, '내배 불러 낳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책임을 다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한다. 휘발되고 마는 가사노동에 대한 보상도, 만족도 없지만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메뉴를 고민하고 장을 보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한다. 


얼마 전 지인 왈, 

'가족'이라는 이름 대신 '가족공동체'라는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함께 꾸려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명칭에서부터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살림'이라는 말이 엄마, 아내의 전유물이 아님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이미 글른것 같다. 

내가 직접하는 게 속 시원하고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내가 해준 따뜻한 밥을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을 보고 있는 게 즐겁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한 걸까, 아니면 하다 보니 그렇게라도 위안을 삼게 된 걸까?


내일은 또... 뭘 해 먹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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