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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26. 2019

D-100 프로젝트
< D-64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김치 day.

결혼해서 김치를 사본 것이 몇 번 안된다. 결혼 초에는 양쪽 집에서 김치를 해주셨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소비되는 김치 양을 감당할 수 없어 만들어먹기 시작했더니 이제는 사 먹는 게 어색한 일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김치가 너무 비싸다. 최근, 신경 쓸 것도 많고 시간도 없어 배추김치 3kg을 2만 원 가까이 주고 샀는데 겨우 4쪽 들어있었다. 우리 집에서 딱 일주일치... 실상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비싼 것도 아닌데 그게 잘 안된다.

어쩔 수 없이 배추 4 통과 총각무 2단을 사들고 왔다. 이 정도면 김장 전까지는 버틸 수 있다.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만 들인다고 해도, 반나절은 후딱 가버린다.

10년 전 수료한 전통음식 전문가 과정에는 김치 전문가 과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우리 가족이 먹는 김치는 나름 '전문가의 김치'다. ㅎㅎ 김치 좀 배우신 분...

그에 반해, 나의 김치에 대한 철학은 비전문적이다.


첫째, '쉽고 빠르고 간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김치는 재료 준비부터 뒷정리까지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다. 그 복잡하고 귀찮은 공정 때문에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 않으려면 각 과정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재료도 가능하면 깐 쪽파, 깐 생강, 깐 마늘로 준비하고, 배추가 아주 비싼 때가 아니면 절임배추를 산다. 찹쌀풀과 액젓, 갖은양념을 섞은 속재료는 한 번에 많이 만들어 소분해 냉동해 둔다. 그러면 다음 몇 번은 배추와 무만 준비해 초간단 김치를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김치가 큰 부담이 아니다.


둘째, 어떤 레시피든 수용한다.

결혼 후 한동안 야심한 밤 음식물 쓰레기통에 몰래 버린 김치만 해도 1년 치는 될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날,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격으로 얻어걸리는 환상의 김치가 탄생한다. 그러나 그 역시 매번 있는 일도 아니다.

'환상의 김치'와 '김치찌개를 해도 맛없는 김치' 사이에서 헤매다 보니 어느새 실패 없는 김치 담그기를 하고 있지만 맛은 묘하게 매번 다르다. 참고하는 요리책이나 블로거의 레시피에 따라 조금씩 달리 시도해보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배를 갈아 넣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잘 익은 대봉감을 툭툭 넣고 버무리기도 한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는 '세상에는 어머니 수만큼의 음식이 존재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허나 김치는 좀 다르다. 할 때마다 방법도 다르고 맛도 달라져서 '어머니가 김치를 해본 횟수만큼의 맛'이 존재하는 것 같다.


정말 웃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제는 밥 차리는 게 세상 제일 큰 스트레스인 것처럼 말하더니, 오늘은 김치 담그는 게 별거 아니란다.

게다가 밥과 김치에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전통음식 전문가' 자격증까지 따다니...

쓸데없이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없다면, 우리 가족들이 그리워할 '엄마 김치 맛'이라는 게 있을까?

엄마가 김치 속을 넣고 있을 때 옆에 침 흘리며 앉아 얻어먹던 김치 속 쌈을 그리워할까?

어떤 광고에서 "아들~~ 군대 휴가 나오면 엄마가 뭐해줄까?" 하니 "##치킨 시켜주세요!" 하던 게 생각난다.

김치야 지천에 깔렸고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맛있는 김치를 사 먹을 수 있는 세상인데...


쓸데없이 열심히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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