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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13. 2021

삶의 재미

좀 괜찮나 싶었는데 작은 아이는 학기가 시작되고 다시 우울모드가 됐다.

쏟아지는 수행평가, 과목별 과제, 그 와중에 코로나 검사... 개학 후 일주일 등교 수업만에 다시 온라인 수업으로 쫓겨났다. 학교에 정이 들래야 들 수가 없다.

한참 아들의 눈치만 보던 내가 물었다.

"뭐.... 안 좋은 일 있어? 많이 힘들어?"

"그냥... 재미가 없다."

"뭐가?"

"다... 사는 게  다 재미없어."


사는 게 재미없다는 말은 누가 해도 듣는 이의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를 쿵 떨어뜨린다. 주기적으로 떨어뜨리는 남편의 돌덩이에도 내 가슴은 단련이 되지 않았다. 거기에 아이가 또 바위 하나를 떨어뜨렸다.


사는 게 재미없다는 건 무슨 말일까? 우리는 언제 사는 게 재미없다고 느낄까? 반대로, 사는 게 재밌다고 여길 때는 언제일까?

웃을 일이 없을 때, 지루할 때, 되는 일이 없을 때, 하고 싶은 일이 없을 때, 나만 불행하다고 느낄 때. 이러한 순간불만족이 지속적으로  따라다닐 때 삶이 재미없다고 느끼지 않을까.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 삶 자체를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슬픈 영화의 주인공처럼 불치병에 걸려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르지 않는 성적, 부모의 불화, 풍족하지 않은 경제적 여건 등을 이유로 들었다. 당연히 부모와의 대화는 원만하지 못했고 모두가 힘든 고3 때는 친구에게 기대기도 힘들었다.

그 시절 나는 혼자 절에 다녔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 시내에 있던 포교당에 들러 혼자 108배를 드렸다. 무섭다는 생각도 못할 만큼 절실한 무언가가 나를 지배했던 시절이다.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나만의 의식이기도 했지만 잘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과 간절함이 더 컸다.


종교도 없고 게임 외에는 특별한 취미도 없는 작은 아이가 스스로 돌파구를 찾을 때까지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난감했다. 학기 중에는 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고집스럽게 지키느라 간간히 예능 프로를 보는 게 전부인 아이다. 형이라도 있으면 좀 나았을까. 아이는 담임선생님께 자신이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 형이라고 말했다. 가장 말이 잘 통한다고 말이다. 지금 저 아이의 답답함 형의 부재 때문은 아닐까.



아이의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풀어주자는 마음에 주말 나들이를 계획했다. 삶의 재미를 알려주겠다는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집이 아닌 곳에서 바람이라도 쐬자는 것.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인 아이는 엄마의 제안에 "그것도 좋고."라는 짤막한 말로 승낙을 했다.


용인 자연휴양림에 있는 '짚라인'을 예약했다. 갑자기 주말에도 출근하게 된 남편 때문에 아이와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그러기에는 역동적인 무언가가 적당해 보였다. 햇볕을 쬐며 몸을 움직이고 땀을 쭉 흘린다면 조금은 기분전환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한 시간여 동안 6개의 코스를 이동했다.

날씨 좋았고 가이드분들은 흥겹고 친절했다. 동행하는 일행들과의 짧고 얕은 대화 부담 없어 좋았다. 아이는 흥을 깨지 않을 정도로만 대화했고, 분위기를 흐리지 않을 정도만 웃었다. 그것만도 감사한 일이었는데 마지막 코스에서 아이는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 엄마가 타는 모습도 촬영해주겠다고 말이다. 내내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걸까. 짚라인을 타며 격하게 흥분하지도 않았고 묻는 말에 겨우 대답이나 하는 아이였지만 동행해준 것이, 움직여준 것이, 배려해준 것이 고마웠다. 그럼에도 아이의 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 같이 어두웠다.


 자신이 나름 과묵한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이 앞에서는 엄청 조잘댔다. 아니다. 눈치 봐가며, 과하지 않을 정도로 자제하며 조잘댔다. 아이는 쓸데없는 말까지 섞어가며 큰소리로 너무 많이 떠드는 엄마 싫어했기 때문이다.

휴.. 엄마 하기 힘들다.

"와~~~ 진짜 재밌다. 그렇지?"

"음... 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그러네."

"나오길 잘했지? 재밌지?"

"응. 그래."

무미건조한 대답이라도 끌어내기 위해 계속 말을 걸었다.


아이는 오늘 하루가 어땠을까?

'날씨는 너무 더웠고 숲이라 벌레가 너무 많았다. 생각보다 아주 재밌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재미있어하는 것 같았으니 그거면 됐고, 오래간만에 바깥공기를 쐐서 좋기는 했지만 덕분에 밀린 일들이 걱정이다. 엄마가 학원까지 빠지며 놀러 가자고 하는 바람에 시험대비 특강을 못 들었으니 다음에 가서 그만큼을 보충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며 나를 조금은 원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마음 어딘가에 조금이라도 '그래도 조금은 좋았다.'라는 마음이 자리 잡았기를 바라본다.


삶의 재미...

스펙터클하고 흥미진진한 일이 일어나지도 않으며 원하는 일이 모두 잘 풀리지도 않고 바라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인간관계 때문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많으며 그렇다고 혼자 있다 보면 외롭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일 천지이며 이렇게 결정해도 후회되고 저렇게 결정해도 마찬가지다.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다가도 바쁠 때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일이 몰아친다. 매 순간 삶이 날 조롱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불쑥 즐거운 일들이 터진다. 아버지의 사업이 흥해 가정형편이 좋아지기도 하고 그 덕에 부모가 다시 다정해지기도 한다. 원하는 학교에 합격하여 즐거운 대학생활을 하고 남부럽지 않은 연애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이쁜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행복을 만끽한다.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싶을 때 반드시 역경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어찌어찌 넘어가기도 하고 해결되기도 한다.

그렇게 살다 보니, 삶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다 보면 결국 0보다는 큰 수가 되는 게 삶 아닐까. 그렇다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자신이 세상을 보는 태도에 따라 삶은 달라지기 마련이다'라고 '나'는 믿지만 그 말이 지금 아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안다.

그저, 하루를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꾸역꾸역 살든 열심히 살든 그렇게 살다 보면 삶이 재미있다는 최면을 스스로에게 걸 날이 올 거라고 말이다.



두 팔 벌리고 누워보라는 가이드의 말을 따른 아들. 저 정도면 즐긴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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