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한테 공부이야기 말고는 할 얘기가 그렇게 없어?"
밥을 먹던 작은 아이가 던진 묵직한 한마디였습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시험기간이라 잔뜩 예민해져있는 아이의 상황을 살피지 않은 것이 미안했지만, 지나치게 아이를 몰아세웠거나 공부에 대한 압박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역시 맞은 사람과 때린 사람의 온도차는 크기 마련인가 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날에도 아들에게서 한소리 들었더랬죠.
아이가 가고 싶어하는 학교에 합격한 학생이 합격자 발표를 듣던 순간을 촬영한 동영상을 발견했습니다. 그 순간이 찡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아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보여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만 좀 해. 다른 사람 합격하는 영상은 뭣하러 찾아서 보여주고 그래?"
이렇게 싫다는 내색을 했을 때 알아듣고 멈췄어야 했거늘 눈치없이 오늘 또 한마디 거든 것에 아이는 결국 터져버린 겁니다.
"그러네. 너랑 공부 얘기 말고는 할 얘기가 딱히 떠오르지가 않네..."
섭섭한 마음과 창피한 마음에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습니다. 이 시간 이후로도 공부 외의 것을 내뱉을 자신이 없었던 까닭도 있습니다. 입도 닫고 눈도 닫고 침대에 누워 한동안 생각해보았습니다. 지난 며칠간 제가 했던 말과 그 말을 들었을 아이의 상황을 말입니다.
"유튜브 그만 봐라~"
"진짜 이상해... 여지껏 공부하다가 지금 막 틀었는데 어떻게 매번 딱 그 타이밍에 그만 보라고 하지?"
"국어랑 과학 시험 준비는 잘 되가? 문제 더 필요한 거 아니야? 학원을 안다녀서 공부하기 힘든거 아니니?"
"방학동안 시험 범위까지 인강 한번 다 봤으니까 괜찮을것 같아~"
"공부 잘 되가? 시험 공부 하고는 있는 거여?"
"학교 쉬는 시간에도 많이 했어~ 걱정 마셔~~"
저도 모르게 아이가 딴 짓 하는지를 은근히 감시하고 있었고 스스로 알아서 잘 할 수 있을까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말로는 "넌 진짜 대단해~ 혼자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니? 엄마 안 닮아서 다행이다~"라며 입이 마르게 칭찬하면서도 깊은 신뢰를 전하지는 못하고 있던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변명을 하자면 말입니다...
작은 아이는 엄마의 관심과 도움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자신의 학업과 성적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즐기는 아이입니다.
"나 수행평가때문에 글 썼는데 한번 봐줘."
"국어 외부지문이 모의고사에서 나오는데 변형문제 많이 있는 사이트 있다고 하지 않았어? 문제 좀 뽑아줘. 그리고 우리학교 기출문제랑 예상문제도 뽑아줘~"
"나 담임선생님이 학교 끝나고 그러셨는데, 1학기까지 포함한 전체 성적이 올랐대. 칭찬해주시더라?"
"아... 이번 학기 시험 잘 보면 전체 평균 또 올라가겠지? 그러면 A학교 갈 수 있겠지?"
이렇게 쉼없이 요구하고 떠들어대는 녀석입니다. 이에 저는 호응하고 같이 떠들어주었을 뿐이구요. 이러면, 변명이 좀 될까요?
그래도 시험기간엔 눈치껏 낄끼빠빠해줬어야 했는데, 그게 문제였습니다. 늘 선을 넘어요.
이제라도 입을 다물고 내 할일이나 해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컴퓨터 작업을 하는 엄마의 숨소리가 신경쓰였던 걸까요? 몇시간째 자기에게 관심 갖지 않는 엄마의 움직임에서 이상기운을 감지한 걸까요? 작은 아들은 어느새 제 옆에 슬쩍 와서 앉았습니다.
"뭐 마셔? 나도 차 한잔 마실까? 뭐 찾아? 뭐 봐?"
찾고자 하는 파일이 안보여 노트북과 외장하드를 들쑤시던 저는 아이 어렸을 때 동영상을 하나하나 틀어보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자주 보던 영상이지만 아이와 저는 마치 처음 보는 영상처럼 웃고 떠들었습니다. 샤워하면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 형이랑 농구하는 모습, 아빠랑 껴안고 뒹굴거리는 모습, 친구들 앞에서 우크렐레 연주하는 장면, 생일파티하는 장면, 코골며 자는 모습... 찍고 찍히던 당시의 이야기를 하느라 밤이 깊어가는 것도 잊었죠. 공부 이야기는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공부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은 없었거든요.
"으악. 못보겠어. 나 왜 저랬던거야?"
한참을 떠들던 아이는 더이상은 창피해 못보겠다며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는 자러 들어갔습니다.
그제야 정신이 차려집니다.
엄마니까 당연히 아이의 진로와 공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야기 나누어야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자꾸 망각합니다.
입시가 당장의 시급한 과제인 것은 맞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아니라는 것을 또 잊었습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내년 입시가 끝나도 우리는 오래오래 함께 행복해야 할 사이인데, 방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