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의 내용이 너무 궁금했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브런치 생활 만 2년, 햇수로 3년째. 이제는 누구든 뭐라도 제안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출판사에 적극 투고를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준비를 하고는 있지만 '제안 메일'이라는 제목은 단꿈에 젖기에 딱 좋다.
이온음료의 광고 대행을 맡고 있다는 그분은 내게 브런치에 홍보글을 올려줄 것을 부탁했다. '협업'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궁금했다. 내가 브런치에 홍보글을 올리는 것이 어떻게 협업으로서의 기능을 하는지 말이다.
구체적인 협업 내용에 대해 묻는 메일을 보내니 바로 연락처를 보내오셨고 나는 용감하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 너머 상대의 목소리는 꽤나 밝고 적극적이었다. 버선발로 대문 앞에 나와 문을 열어주듯이 환대를 했으며 적극적으로 내용을 설명했다.
본인이 광고를 맡고 있는 이온음료 회사의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 내용과 취지를 담은 글을 브런치에 올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관련 자료를 보내드릴 터이니 참고하시라며 그냥 써주셔도 되고 원하시면 소정의 원고료도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얼떨결에 "알겠습니다. 주말 동안 써보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주말 동안 글을 쓰겠다고 했지만 그동안 내가 한 일은 오로지 생각이었다. 해당 제품의 필요성, 그 프로젝트의 취지를 나의 일상에 어떻게 녹여 글을 쓸 것인지를 구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제안을 수락해 홍보글을 쓰는 것이 브런치 작가로서 해도 되는 일인지를 생각했다. 할까 말까를 고민한 게 아니라, 안 하고 싶은 이유를 정리했다는 것이 맞다.
일단, 내가 봐온 브런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브런치에서 공식적으로 콜라보하는 공모전을 제외하고는 홍보 목적의 글을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그런 글을 본 적도 없을뿐더러 그런 작가도 본 적이 없다. 대놓고 하든 은근하게 하든 특정 제품에 대한 글을 홍보의 목적으로 쓰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 이유다.
다음 이유는, 잘 쓸 자신이 없었다.
누가 봐도 작위적이고 어색한 드라마 PPL처럼 보일 게 뻔했다. 해당 제품에 대한 엄청난 관심과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설명 좀 듣고 홍보 영상 좀 본 것을 토대로 글을 쓴다면 그건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가짜 글이 될게 뻔했다. 발행해놓고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웃 작가님들이나 구독자분들도 글을 읽으며 의아해하지 않을까. "얘, 뭐지?"
마지막으로, '협업'의 정의, 범위가 모호했다.
협업이라 함은 함께 협력해서 일을 완성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업무의 목적과 내용에 대한 공유가 전제되어야 하며 각각의 역할을 맡은 이들이 동등한 대가와 보람을 느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브런치에 글을 발행함으로써 내가 얻게 되는 보람과 대가라는 건 뭘까. 원고료를 달라면 줄 생각이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글을 쓰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난 감사해야 하는 거였나. 상대는 나에게 시혜를 베푼 거였나. 난 그걸 당차게 거절한 건가. 과연 어떤 부분이 협업인 걸까?
재미있는 경험, 멋진 모험, 혹은 또 다른 도전이 될 것 같았다면 두말없이 글을 썼을 테다.
하지만 나를 협업의 대상으로 삼은 계기나 경위, 이 협업이 서로에게 어떤 가치를 줄 것인지에 대한 성의 있는 설명이 없었다는 것만으로도 거절할 이유는 충분했다.
순전히 글쓰기가 좋아서 어떤 경제적인 보상 없이도 매일매일 글을 발행하고 있는 성실한 작가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빴다는, 오지랖의 성격이 짙은 이유도 있다. 그 수많은 작가들과 브런치라는 공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
나의 글이, 우리들의 글이 그런 식으로 소비되는 게 싫었다.
어쩌면 이미 브런치에는 그런 글들이 넘쳐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뭐라 해도 누군가의 이야기인 것은 맞으니 글은 글이지 않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