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씨는 에너지가 다운되면 몸이 어떻게 반응해요?"
얼마전 지인에게서 받은 질문입니다. 어리둥절해하는 제게 지인은 다시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너무 지친다거나 심신이 괴로울 때요.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는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거든요."
저는 힘들면, 우울해집니다. 겉으로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애쓰지요. 가족들에게 제 개인의 문제로 짜증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속으로 끙끙 앓습니다. 그러다 보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약 먹고 자기를 반복하며 버텨냅니다. 더 극심한 괴로움이 몰아닥치면 설사를 쉼 없이 합니다. 대장 내시경 하기 전 맛없는 물약을 마시고 하는 설사처럼 말이죠. 그러다가 혼자 깨달음을 얻고 다시 회복합니다.
두통과 씨름하며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결론은 '가만히 있을걸...'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반성하면 설사는 멎고 두통도 사라졌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정의롭다고 여긴 순간의 판단으로 인해 세상에 적을 만들었고 그게 또 못내 괴로웠던 것입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것은, 그런 세상과 작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삶에서 겪었던 갈등, 스트레스와는 영영 이별할 수 있는 곳이라 여겼죠. 게다가 그런 개인적인 번뇌를 얼마든 쏟아내고 풀 수 있는 곳이라 믿었습니다. 브런치로 인해 설사를 하고 골치 아플 일은 없을 거라고 말이죠.
컴퓨터에 브런치 자동 로그인을 해놓지 않았습니다. 시작하기를 누르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누르는 단계에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무균실 입장 전 에어샤워를 하듯 삶의 먼지를 다 털어내고 온전히 '나'만 들여다보는 삶을 원했던 것입니다.
제 지난 글을 다시 보니 저는 글 곳곳에서 나란 사람을 해부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을 좋아했죠. 행복한 나, 슬픈 나, 착한 나, 못된 나, 명확한 나, 혼란스러운 나.... 모든 면면을 관찰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애써 에어샤워를 마치고 무균실에 들어와 놓고는 한다는 것이 제 삶의 먼지를 들여다보는 거라니... 절대 벗어날 수 없었던 겁니다. 삶에서요.
몇몇 일들을 겪으며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며 이곳에서 나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제 삶을 반추하며 삶의 재미와 의미를 찾는 글을 쓰고 싶다던 저는 제 글쓰기에 집중하지 않고 타인의 글을 기웃거리며 쓸데없는 참견질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 손에서 나간 글이 작은 균열을 만들었고 그것이 괴로워 몇 날 며칠 두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다행히 배탈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만, 저를 흔든 것이 결국 저임을 잘 알고 있기에 혼자 숨죽이며 진통제를 입에 털어넣는 것으로 감내했습니다.
글로 표현하고 글로 소통하는 것이 실제의 삶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은 철없고 무식한 소행이었습니다. 글이 곧 나이고 글이 곧 상대인 것을 망각했던 거죠. 결국 온라인 상의 내가 실제 세계의 나를 흔들어놓고서야 비로소 브런치를 알게 됐습니다.
브런치도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삶이 제게 던졌던 온갖 화두에 대한 답은 '모두 내 안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브런치가 제게 던진 화두에 대한 답도 다르지 않습니다. 내 안에 더 집중하는 글, 삶을 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