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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31. 2020

나는 노는 물이 다르다.

새해 글 많~~이 받으세요~~

인정한다. 2020년, 브런치가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음을.

2019년 9월부터 시작된 글쓰기가 2020년의 끝자락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 덕이었다는 것 역시 인정한다.

운신의 폭이 줄어들어 나들이나 쇼핑도 못했던 한 해. 그나마 좋아하는 유일한 취미이자 놀이인 지인들과의 화투도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멀리하게 된 한 해. 그럴 수밖에 없었던 환경 탓을 하든, 이유야 어찌 됐건 브런치에서 놀다 보니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다. 마땅히 뒤돌아 보며 정리할 것도 없어 뵈는 2020년 대신 '브런치'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정리해보기로 했다.


1. 브런치는 거울이다.

나 혼자 일기장이나 PC에 끄적이는 글이었다면 글이 얼마나 나를 변화시키는지 몰랐을 것이다. 일상을 적거나 누군가에 대한 속내를 드러내면서 나의 소회를 적는다는 기본적인 결은 일기나 브런치 글이나 같다. 하지만 브런치는 타인이 함께 들여다보는 글이라는 차이로 인해 내 글이지만 내 글이 아닌 듯 몇 번을 읽어보게 된다. 단순한 푸념이나 뒷담화에서 그치던 글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된다. 나를 돌아보게 하고 이전의 나와 달라지기 위한 노력을 만천하에 고하게 된다.

글쓰기도 결국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관종 짓'의 하나라고 여긴다. 따라서 괜찮은 사람, 부족하지만 발전 가능한 인간형으로 비치길 원한다. 그 바람을 갖고 글을 쓰다 보면 내가 가진 흠결과 빈틈이 내 눈에도 훤히 보이고 글에서 비치는 사람처럼 살기 위한 다짐을 해보기도 한다.


2. 브런치는 놀이터다.

이웃 작가님의 글에서 '글을 쓰는 것은 유희여야 한다.'는 구절을 보았다. 조회수, 구독자수, 라이킷 수등 '숫자'에 집착, 연연하던 때가 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브런치 앱부터 들어가 보는 게 일상으로 굳어졌지만 그 근저에는 '브런치가 재미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도대체 재미가 없다면 왜 이렇게 브런치 앱 자리에만 손가락 지문이 남을 정도로 들락날락거리겠는가 말이다.

아침 먹고 브런치, 점심 먹고 브런치, 저녁 먹고 브런치. 1일 3 브런치는 기본이다. 구독하는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놀이터이자 도서관인 셈이다.

조회수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구독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작가 제안 메일이 왔으면 좋겠다, 브런치 북 대상 탔으면 좋겠다 등등의 온갖 집착과 욕심을 버리니 하나 남는 욕망은 '매일 글을 쓰고 싶다'였다. 글을 쓰는 것이 재미있고, 그걸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즐겁고, 쓸거리를 찾아 삶을 요리조리 뜯어보는 게 재미있다. 브런치가 아니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놀이다.


3. 브런치는 연인이다.

놀이터를 들락거리는 것처럼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장소다. 두근두근 설렘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백만 송이 장미꽃을 한 아름 안겨준다. 가슴이 부풀어 올라 터질 것 같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다.

하지만 연인과의 만남도 늘 좋은 것만은 아니듯, 브런치 역시 때로는 얄미울 때가 있다. 우울한 날씨처럼 브런치에도 왠지 생기가 없어 보이는 날. 정확히 말해 내 브런치에만 먹구름이 끼어있는 듯 한 날이 있다. 일부러 날 외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서버 장애가 의심될 정도로 반응이 없는 날. 나와의 밀당을 즐기며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는 애인 같다. 눌러도 반응 없고 이유를 물어도 답이 없다. 나 역시 토라져 흥하고 돌아서 버린다. '당분간 내가 먼저 연락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면서도 힐끔힐끔 동태를 살피는 꼴이라니...

소모적인 감정싸움에 지칠 때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잡는다. 웃음 띤 눈을 가느다랗게 만들고 째려보는 것으로 냉전은 끝이다. 다시 알콩달콩 사랑은 다시 시작된다.  


4. 브런치는 마을이다.

브런치에는 음악가도 있고 빠티쉐도 있고 선생님도 있다. 귤 까먹으며 함께 수다 떨 친구들도 있고 이웃집 아저씨, 옆집 총각, 아래층 할머니, 위층 애기 엄마도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 접시를 들고 이 집 저 집 퍼 나르는 동네 주민들처럼 서로 마실 다니느라 정신없다. 이웃집 아저씨 댁에 갔더니 위층 애기 엄마가 놀러 와있고 아래층 할머님을 뵈러 가니 옆집 총각이 보인다. 어느 집에서는 반상회라도 하듯 모두 모여있다. 그런가 하면 새로 이사와 쭈뼛거리는 이웃도 보이고 매일매일 집 앞 비질을 하듯 부지런히 글을 올리는 이웃도 보인다.

한동안 소식 없는 이웃이 있으면 궁금해지고 그러다가 글이 올라오면 반갑다.

"어머, 어머 그런 일이 있었대? 어쩐지... 한동안 안 보이더라니..." 하며 한달음에 달려가 이야기를 들어준다. 수다쟁이 이웃 덕에 하하호호 하루가 즐겁기도 하다. 1년 365일이 시끌벅적한 마을이다.


5. 브런치는 인생이다.

브런치에는 '희노애락애오욕'이 모두 들어있다.

희! 글 쓰는 행위 자체가 주는 기쁨

노! 내 글에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분노

애! 각종 공모전에서 떨어졌을 때 감추지 못하는 슬픔

락! 내 글을 읽고 공감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즐거움

애! 글을 쓸 때마다 삶을 향해 샘솟는 사랑

오! 조회수, 구독자수, 라이킷 수, 수, 수, 수에 연연하는 자신에 대한 증오

욕! 좀 더 잘 쓰고 싶다, 더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


조회수가 고공행진이라도 하는 날엔 세상을 다 가진 듯, 내가 겁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인듯한 착각에 빠졌다가 브런치 북 당선작들을 읽어보면 왜 내 글은 아니었는지를 알게 되는 절망에도 빠진다. 글을 계속 써야 하는지, 글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 고민하다가 어느 날 툭툭 털고 일어나 '그래도 써야지!' 하게 되는 묘한 것. 우리 인생과 똑 닮은 '브런치 살이'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브런치에 입성할 때, 분명 꿈과 희망에 가득 찼었다. 그저 글 쓰는 게 좋아서 작가가 된  좋았다고는 말 못 하겠다. 인기 있는 작가가 되고 싶었고 책도 내고 싶었다.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이제는 글 쓰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그저 좋다. 누가 읽어주건 말건, 누군가에게 공감과 울림을 일으켰다면 좋지만 아니었더라도 쓰고 싶어 쓴 글이니 됐다. 쓸 수 있으니 좋다. 태어났으니 사는 것처럼 작가가 됐으니 쓴다.

저마다 즐거움을 느끼고 힐링이 되는 놀이가 하나쯤은 있겠으나, 글 쓰는 플랫폼이 브런치만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내가 노는 물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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