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구하는 일병

전역까지 D-446

by 늘봄유정

1박 2일의 출장을 다녀왔단다.

'마! 이게 가을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산이 겹겹이 보이던 곳, 용인의 공기보다 훨씬 차던 연천이었다.

교육자원봉사 컨설팅으로 경기도 전역을 돌아다녔던 한 해였다. 몇 군데 안 남아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제일 먼 동두천, 연천이 포함되었지 뭐냐. 그래서 담당 주무관과 컨설팅위원들은 한번 이동으로 두 군데 컨설팅을 하기로 했고 그게 이번 주였단다.


연천 대광리역에서도 한참 들어가는 곳에 폐교 하나가 있는데, 그곳이 교육자원봉사센터로 예정된 공간이었다. 연천에서도 외곽이고 지도상으로 보면 최전방인 곳이라 걱정을 했는데, '이런 폐교라면 통째로 구매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쁘고 정이 가는 곳이더라. 언젠가 아이들을 잔뜩 품었을 학교와 그 학교를 안전하게 감싸주었을 오래된 나무가 더 쓸쓸해 보인 이유다.


세상은 그렇게 빨리, 무서울 정도로 낯설게 변해가고 있더라. '라떼는'이라는 말도 철 지난 유행어처럼 느껴질 정도지. 군대도 예외는 아니더라. 가장 보수적인 집단의 대표 격인 학교와 군대도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 것 같다.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변하고 있으니 조직이 변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겠지.


출장을 끝내고 집에 들어서니 소포가 하나 와있더라.

얼마 전 가족 톡방에 네가 물었지. 보고 싶은 책이 뭐냐고.

요즘 군인들은 자기 계발 비용이라는 것을 받는데 자격 취득이나 도서구입 등의 명목으로 쓸 수 있다고 했지. 이제 일병을 달고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생긴 네가 자격증 취득을 위한 책을 산다며 가족들에게도 책 한 권씩을 선물한다는 말에, 감동했단다. 자신의 진로를 준비할 정도로 성장했음이 놀라웠고 가족을 챙겨준다는 마음이 고마웠단다.

묵직한 상자 안에 가득 든 책을 보며 달라진 군대를 실감했다.

사회와 단절된 게 군대라지만 군인들은 언젠가 다시 사회로 복귀해야 하는데, 이제는 군대가 그걸 도와주고 있는 거잖아. 체대생으로의 네 미래를 천천히 준비할 책들 사이로 아빠가 주문한 투자서와 엄마가 요구한 <기형도 전집>을 보며 뭉클했어. 네가 엄마 아빠에게 처음 해준 책 선물...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군대가 변한 걸 제대로 실감한 건 일주일 전이었지.

현관 앞에 영어가 잔뜩 쓰인 낯선 택배 상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받는 사람 이름에 네 이름과 주소가 적힌 걸 보았지. '해외로 간 친구가 있나? 네 입대를 모르는 누군가가 외국에서 선물을 보낸 건가?' 생각하며 열어본 상자에는 2.5kg짜리 프로틴이 두 포대나 들어있더라.

"해외 직구하는 군인 처음 본다~ 프로틴 5kg이라니..."

오전 10시쯤이었으니 엄마의 톡에 답을 할리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파견 훈련을 나와있어 휴대폰 사용이 자유로웠던 너는 30분도 안되어 답을 했지.

"ㅋㅋㅋㅋㅋㅋ"

"아마존 같은 데서 시킨 거야?"

"노노. 공식 홈페이지에서."

"자대로 갔을 때 택배로 보내주면 돼?"

"휴가 나가서 다 챙겨가려고~"

뭐지? 저 일병의 여유로운 직구 쇼핑은? 당황스러우면서도 어찌나 웃기던지.


지난 주말에는 훈련 종료를 앞두고 치킨 회식이 있다고 했지.

5km를 걸어가야 하지만 훈련소 내에 유명 브랜드의 치킨집이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치킨을 너무 많이 먹어 저녁 식사도 건너뛰었다는 말에, 군대 진짜 좋아졌다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


해외 공홈에서 직구하는 일병이라니...

파견 훈련 동안 한시적이지만, 휴대폰 사용도 자유로운 일병이라니...

BHC 치킨을 실컷 먹은 일병이라니...


낯설지만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단다.

'국가 안보, 국민의 안전'이라는 거국적인 사명 때문에 경직되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조직이지만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 군인들의 자유와 인권도 신경 쓰고 있는 거잖아. 혹자는 그런 군대의 변화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지만 군인으로서의 사명과 인간으로서의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변화라면 환영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떠난 폐교에도 또 다른 사람들이 모여 배움을 이어나갈 예정인것처럼, 모든 변화라는 건 이미 긍정을 전제로 한 게 아닐까.


***

출장 중에도 내내 군인 아들을 떠올린 것은,

붉게 물든 가을 산, 대비되어 더 푸른 하늘, 입김 나오는 아침 공기 한가운데에서도 너를 떠올린 것은,

아무도 없는 폐교를 거닐면서 내내 네 생각이 난 것은...

수시로 들려오는 포탄 소리 때문은 아니었단다.


연천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도로 곳곳에서 모습을 보이던 군용 트럭과 그 안에 앉아 있는 군인들, 길거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던 앳된 얼굴의 그들을 보며,

'아... 난 군인이 된 아들의 군복 입은 모습을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구나.'를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집에서 손 내밀면 닿을 거리에서 훈련받고 있어도 얼굴 한번 못 봤는데, 오늘 다시 함안 자대로 내려간다는 사실이 씁쓸했기 때문이란다.


처음엔 낯설고 힘들었던 군대였겠지만,

육군 특수전학교에서의 5주 훈련을 끝내고 '체력시험 올 특급, 이론시험 통과'라는 멋진 기록을 남긴 일병.

너의 적응을 축하하고 앞으로의 변화를 응원한다.

그래서, 보고 싶다.


일병이 직구로 시킨 프로틴 5kg
책 잘 읽을게~~
연천 대광리역 앞 군인용품 판매점
연천의 어느 폐교


보고싶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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