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온다.

전역까지 D-435

by 늘봄유정

네가 입대한 지 백일이 지났다. 오늘이 정확히 114일째 되는 날이구나.

너의 공백이 자연스러워졌다고 생각했다. 자주 주고받던 문자와 통화로 무뎌졌다고 느꼈다.

그런데 연 이틀 네가 꿈에 나타나더라. 그렇게 다시 널 만나고 나니 또 눈물이 차오르더라.


첫 꿈에서 너는 휴가를 나왔단다.

네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던 나는 네가 샤워하는 화장실 앞에 쭈그리고 앉아 너를 지켜보고 있었지. 마치 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단다. 샤워하는 동안 무섭다고, 엄마 어디 가지 말고 그 앞에 꼭 앉아 있으라고 하던 그때로 말이다.

어떻게 아셨는지 친할머니, 외할머니에게서 계속 전화가 왔지. "우리 호재 휴가 나왔다며? 언제 오니? 할미가 갈까?" 라며 애달파하시는 두 분의 전화를 계속 받는 꿈.


다음날 꿈에서, 엄마와 네 동생은 네게 면회를 가고 있었다.

나는 멀쩡히 학교에 있는 아이를 땡땡이 시킨 엄마였다. 형에게 면회 가자고 말이다. 둘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아빠가 우리 이런 거 알며 엄청 화낼 텐데? 학교까지 땡땡이친 거 알면 말이야~"라고 말하면서도 깔깔 웃어댔단다. 너를 만나 우리는 계곡에 놀러도 가고 외가에 놀러도 갔는데, 넌 군장을 내려놓지 않고 있더라. 물속에 들어가면서도 네 몸집만 한 가방을 내려놓지 않더라. 그게 어찌나 마음 아프던지... 꿈속에서도 엄마 맘이 아렸단다.


꿈에서 깨자마자 면회 신청을 알아보았다.

곧 휴가를 나갈 테니 먼길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는 너의 만류도 무시했다. 확정된 것도 아닌 휴가만 믿고 있다가 엄마 눈에서 진물이 나올 지경이었거든... 아니나 다를까 선임들에게 휴가를 양보해 내년 1월에나 휴가를 나올 수 있다고 실토하지 않았니.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요즘 휴가 신청은 소대장님에게 문자로 신청하더구나. 11월 주말은 이미 신청이 끝났고 주중으로 가능한 날을 알아보는데, 무슨 특별 훈련이 그리도 많은지 문의하는 날마다 안된다는 답변뿐이더라. 겨우겨우 11월을 넘기지 않는 어느 날로 예약을 해놓고 나니, 마음이 분주해졌다.


김치를 담갔다.

너를 키우는 동안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김치를 해야 했다. 한 끼에 배추김치 4분의 1포기를 먹어치우던 너 때문에 우리 집 김치 회전율이 꽤 빨랐는데, 네 입대 후 썰어놓은 김치가 쉬어버릴 때까지 줄지를 않았다. 줄지 않는 김치 덕분에 나의 김치 의욕은 사라져 버렸고 '조금 사볼까?' 하는 마음까지 먹고 있었지.

하지만 너를 만나러 가는 길, 별맛 없지만 엄마가 만든 김치를 먹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김치를 담갔다.


배추에 속을 넣는데 네 생각이 났다.

배춧잎에 속을 싸서 입에 넣어달라고 줄 서있던 두 녀석들 중 한놈만 옆에 서있지 뭐냐. 실컷 먹고 물 마시고 방으로 들어갔다가도 어느새 다시 돌아 나와 내 앞에 서서 입을 벌리고 있던 너였는데, 이젠 네 동생만 그러고 있다.

수육을 삶아 배춧잎에 싸서 볼이 터지도록 씹고 있는데도 네 생각이 났다.

너는, 군대에서 매끼 고기가 나온다며 걱정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김치한 날 먹는 따끈한 수육 맛은 볼 수가 없겠지. 새우젓에 찍어 한입, 쌈장에 찍어 한 입, 배추 속을 얹어 한 입, 겉절이에 싸서 또 한입. 같이 먹는 사람까지 맛있게 만드는 네 푸짐한 먹성이 그리웠다.


엄마, 아빠는 눈만 마주치면 네게 갖고 갈 음식을 의논했단다.

LA갈비, 깻잎전, OO치킨 허니콤보, 족발, 불닭발, 회, 초밥, OOO 평양냉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엄마 아빠는 이 정도를 가져갈 생각이야~
저걸 다? 너무 많은데...

톡에서마저 당황한 너를 보니 많다 싶기는 했지만, 조금씩 다 가져가서 맛보게 하고 싶더라.

우리만 이렇게 극성맞은 것도 아니란다. 소대장님이 만든 SNS에 "면회 가서 샤부샤부를 해주고 싶은데 휴대용 버너를 챙겨가도 되나요?"라는 문의글도 올라왔더라. 아이가 좋아했던 음식이겠지...

엄마 아빠는 아직도, 저 리스트에서 뺄 것은 안 보이고 빠뜨린 것만 찾고 있단다. 그러니 우리가 가는 날까지 먹고 싶은 게 생각나거든 또 추가해주기를...


입대 첫날, 전역까지 548일 남았던 것이 이제 435일로 줄어들었다. 앞자리가 바뀌는 경이로운 경험을 한 달 뒤면 또 하게 될 터.

그날은 오고 있더라.


올해는 못 보겠구나 낙담하고 있었는데, 네 얼굴을 보고 쓰다듬을 수 있는 날도 2주 남았다.

그날도 오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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