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까지 D-425
LA갈비, 깻잎전, OO치킨 허니콤보, 족발, 불닭발, 회, 초밥, OOO 평양냉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엄마 아빠는 이 정도를 가져갈 생각이야~
저걸 다? 너무 많은데...
면회를 사흘 앞두었던 지난 월요일...
시간이 무척이나 안 가더구나.
아침 일찍 일어나 인근 초등학교에서 두 시간 수업 봉사를 하고 왔는데도 정오가 지나지 않았다. 온라인 클래스를 하고 있는 네 아우와 점심을 먹고 치우고 한숨 잤는데도 왜 여전히 낮인 거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네게 가져가려고 주문한 양념게장이 잘 출발했는지 확인했는데도 저녁은 오지 않았다. 밤이 되어야 달력에서 오늘 날짜 위에 X 표시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너무 많은 음식이 부담된다는 네 말에, 가져가기로 한 음식의 절반을 덜어 내고 나니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숨죽이며 시간을 이겨내야 했다.
면회 전날...
아빠는 네가 좋아하는 평양냉면집에서 육수와 면을 포장해왔다. 버너를 쓸 수 없다는 면회실에서 어떻게 면을 끓일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전기포트를 가져가기로 했다. 물에서 건져 찬물에 헹구려면 체망도 있어야 했지.
"이래도 되나? 너무 오버 아니야?"라는 엄마의 말에 아빠는 당당히 얘기하더구나.
"아들 먹고 싶다는 거 챙겨주고 싶은 부모 마음인데 오버가 어딨어~"
입대 전 네가 자주 먹던 불족발 집에 주문전화를 걸었는데, 벌써 다 팔리고 없다고 하더라. 8시밖에 안된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어느새 맛집으로 소문이 났던 건지 야속하고, 좀 더 일찍 주문하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 배달 어플에서 평점이 높은 곳으로 주문을 하고 시원한 뒷베란다에 놓아두었다.
면회 당일...
다른 건 다 됐고 교촌치킨 허니콤보, 평양냉면, 불족발 그리고 엄마가 만든 깻잎전이 먹고 싶다고 했지. 아침 일찍 일어나 깻잎전을 부쳤다. 한참 부치고 있는데 이미 샤워를 마치고 멀끔하게 차려입은 뒤 진한 화장품 냄새를 풍기며 아빠가 옆에 와서 말하더라.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말이야, 계란말이가 그렇게 먹고 싶더라? 다른 계란 요리는 다 나오는데 말이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어."
듣고 보니 일리가 있더라. 단체급식에서 계란말이가 나오는 건 힘든 일일 테지... 당장 계란 6개를 풀고 당근과 파를 다져 넣어 정성껏 말았다. 수능 도시락으로 다져진 계란말이 솜씨를 뽐냈지.
아이스박스 문을 닫기 전 아빠의 주문이 또 들어왔다.
"우리 집 보리차 싸갈까? 가족들이 어디 여행 갔다 오면 우리 집 보리차부터 마셔야 집에 온 것 같다고 했잖아."
그 말도 일리가 있더라. 흔한 티백을 우려냈을 뿐인데도 우리 집 음식 중 최고로 인정받던 보리차.
냉장고에 있던 시원한 보리차를 보냉병에 담았다.
함안으로 들어가기 전, 진주에 들렀다.
그곳에서 네가 좋아하는 치킨을 포장했다. 거기서 멈추지 못하고 엄마 아빠는 폭주했다. 근처 마라탕 집에서 마라샹궈를 포장했다. 면회실 앞까지 갔다가 아무래도 아쉬웠던 아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네가 좋아했던 음식들이 다시 하나하나 떠올랐기 때문이다.
면회실에서...
그저 빛...
면회실 저쪽에 혼자 앉아 우리를 기다리던 네 모습은 그저 빛이었다.
누군가는 아들을 만나면 울 거냐고 물었었지만, 우는 게 다 웬 말이니. 우리는 빛을 보고 울지 않잖아. 그저 황홀할 뿐이지. 꿈일지 생시 일지 모를 그 상황에서 그저 너를 안아보고 배고프다는 널 위해 상을 차릴 뿐이었다.
끓여낸 면위에 얼음 가득한 육수를 부어 냉면을 만들고, 계란말이와 깻잎전이 들어있는 찬합을 펼쳐놓고, 준비해 간 모든 음식을 차려놓은 후에야 네 앞에 앉아 찬찬히 네 얼굴을 보았단다. 아빠와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너와 그런 너를 꿀 뚝뚝 떨어지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빠가 보이더라.
'피... 자기 혼자 아들이랑 앉아서 저렇게 얘기 나누는 거야? 난 밥 차리느라 이제야 아들 얼굴 보는데? 집에서도 자기 혼자 아들 만나러 가는 사람처럼 굴더니...'
어찌나 아빠한테 샘이 나던지...
"이 보냉병에 뭐 들었게~~ 맞혀봐~"라는 엄마 아빠의 물음에 넌 잠시 고민한 뒤 답했지.
"보리차? 진짜 보리차야? 대박!"
그랬다. 엄마가 준비해 간 깻잎전과 허니콤보치킨도 잘 먹었지만 네가 가장 맛있게 먹던 건 아빠가 싸가자던 계란말이와 보리차였단다.
어쩌면 너를 더 깊이 사랑하고 헤아린 사람은 엄마가 아닌 아빠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질투가 나더라. 난 엄마니까 누구보다도 널 잘 알고 누구보다도 널 더 사랑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빠의 사랑이 더 절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표현을 안 했을 뿐이지 아빠 눈에서도 아들 보고 싶어 진물이 났나 보구나... 싶더라.
네 옆을 연신 오가며 손주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할머니에게도 질투가 나더라.
차가워진 족발을 어떻게 데울 방법이 없는지 자꾸 묻는 것 하며, 이것도 먹어봐라 저것도 먹어 봐라 하면서 엄마인 나보다 더 나서서 너를 챙기는 모습이 못마땅했지.
외할머니는 네가 밥 먹는 모습, 통화하는 모습, 서있는 모습, 앉아있는 모습을 계속 사진에 담았다. 작은 체구로 요리조리 왔다 갔다 하면서 말이다.
가만히 앉아 너와, 네 아빠와, 네 외할머니를 번갈아 보니...
그 순간 가장 행복한 이는 나더라. 기뻐하는 사람 셋을 한꺼번에 바라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던게지.
그제야 하루 종일 제대로 된 끼니를 먹지 못했다는 게 생각나더라. 그런데도 배가 고프지 않던 하루였다.
면회 다음날...
아기같이 뽀얗던 얼굴에서 젖살은 빠지고 건강하게 그을린 네가 떠오른다.
5주 동안 받았던 특별훈련 기간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는 네 말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난다.
선임들이 하는 모바일 게임을 곁눈질로 알아두었다가 네 휴대폰에도 깔았다는 얘기도 생각난다. 선임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모든 걱정이 기우였음을 확인하던 어제였다.
넌 잘하고 있었고 여전히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첫 면회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오늘이 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