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온다. 첫 면회

전역까지 D-425

by 늘봄유정

네가 입대한 지 정확히 114일째 되던 날.

너의 공백이 자연스러워졌다고 생각했다. 자주 주고받던 문자와 통화로 무뎌졌다고 느꼈다.

그런데 연 이틀 네가 꿈에 나타나더라. 그렇게 다시 널 만나고 나니 또 눈물이 차오르더라.


첫 꿈에서 너는 휴가를 나왔단다.

네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던 나는 네가 샤워하는 화장실 앞에 쭈그리고 앉아 너를 지켜보고 있었지. 마치 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단다. 샤워하는 동안 무섭다고, 엄마 어디 가지 말고 그 앞에 꼭 앉아 있으라고 하던 그때로 말이다.

어떻게 아셨는지 친할머니, 외할머니에게서 계속 전화가 왔지. "우리 호재 휴가 나왔다며? 언제 오니? 할미가 갈까?" 라며 애달파하시는 두 분의 전화를 계속 받는 꿈.


다음날 꿈에서, 엄마와 네 동생은 네게 면회를 가고 있었다.

나는 멀쩡히 학교에 있는 아이를 땡땡이 시킨 엄마였다. 형에게 면회 가자고 말이다. 둘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아빠가 우리 이런 거 알며 엄청 화낼 텐데? 학교까지 땡땡이친 거 알면 말이야~"라고 말하면서도 깔깔 웃어댔단다. 너를 만나 우리는 계곡에 놀러도 가고 외가에 놀러도 갔는데, 넌 군장을 내려놓지 않고 있더라. 물속에 들어가면서도 네 몸집만 한 가방을 내려놓지 않더라. 그게 어찌나 마음 아프던지... 꿈속에서도 엄마 맘이 아렸단다.


꿈에서 깨자마자 면회 신청을 알아보았다.

곧 휴가를 나갈 테니 먼길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는 너의 만류도 무시했다. 확정된 것도 아닌 휴가만 믿고 있다가 엄마 눈에서 진물이 나올 지경이었거든... 아니나 다를까 선임들에게 휴가를 양보해 내년 1월에나 휴가를 나올 수 있다고 실토하지 않았니.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요즘 휴가 신청은 소대장님에게 문자로 신청하더구나. 11월 주말은 이미 신청이 끝났고 주중으로 가능한 날을 알아보는데, 무슨 특별 훈련이 그리도 많은지 문의하는 날마다 안된다는 답변뿐이더라. 겨우겨우 11월을 넘기지 않는 어느 날로 예약을 해놓고 나니, 마음이 분주해졌다.


김치를 담갔다.

너를 키우는 동안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김치를 해야 했다. 한 끼에 배추김치 4분의 1포기를 먹어치우던 너 때문에 우리 집 김치 회전율이 꽤 빨랐는데, 네 입대 후 썰어놓은 김치가 쉬어버릴 때까지 줄지를 않았다. 줄지 않는 김치 덕분에 나의 김치 의욕은 사라져 버렸고 '조금 사볼까?' 하는 마음까지 먹고 있었지.

하지만 너를 만나러 가는 길, 별맛 없지만 엄마가 만든 김치를 먹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김치를 담갔다.


배추에 속을 넣는데 네 생각이 났다.

배춧잎에 속을 싸서 입에 넣어달라고 줄 서있던 두 녀석들 중 한놈만 옆에 서있지 뭐냐. 실컷 먹고 물 마시고 방으로 들어갔다가도 어느새 다시 돌아 나와 내 앞에 서서 입을 벌리고 있던 너였는데, 이젠 네 동생만 그러고 있다.


수육을 삶아 배춧잎에 싸서 볼이 터지도록 씹고 있는데도 네 생각이 났다.

너는, 군대에서 매끼 고기가 나온다며 걱정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김치한 날 먹는 따끈한 수육 맛은 볼 수가 없겠지. 새우젓에 찍어 한입, 쌈장에 찍어 한 입, 배추 속을 얹어 한 입, 겉절이에 싸서 또 한입. 같이 먹는 사람까지 맛있게 만드는 네 푸짐한 먹성이 그리웠다.


엄마, 아빠는 눈만 마주치면 네게 갖고 갈 음식을 의논했단다.

LA갈비, 깻잎전, OO치킨 허니콤보, 족발, 불닭발, 회, 초밥, OOO 평양냉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엄마 아빠는 이 정도를 가져갈 생각이야~
저걸 다? 너무 많은데...

톡에서마저 당황한 너를 보니 많다 싶기는 했지만, 조금씩 다 가져가서 맛보게 하고 싶더라.

우리만 이렇게 극성맞은 것도 아니란다. 소대장님이 만든 SNS에 "면회 가서 샤부샤부를 해주고 싶은데 휴대용 버너를 챙겨가도 되나요?"라는 문의글도 올라왔더라. 아이가 좋아했던 음식이겠지...

엄마 아빠는 아직도, 저 리스트에서 뺄 것은 안 보이고 빠뜨린 것만 찾고 있단다. 그러니 우리가 가는 날까지 먹고 싶은 게 생각나거든 또 추가해주기를...


입대 첫날, 전역까지 548일 남았던 것이 이제 435일로 줄어들었다. 앞자리가 바뀌는 경이로운 경험을 한 달 뒤면 또 하게 될 터.

그날은 오고 있더라.


올해는 못 보겠구나 낙담하고 있었는데, 네 얼굴을 보고 쓰다듬을 수 있는 날도 2주 남았다.

그날도 오고 있더라.



면회를 사흘 앞두었던 지난 월요일...

시간이 무척이나 안 가더구나.

아침 일찍 일어나 인근 초등학교에서 두 시간 수업 봉사를 하고 왔는데도 정오가 지나지 않았다. 온라인 클래스를 하고 있는 네 아우와 점심을 먹고 치우고 한숨 잤는데도 왜 여전히 낮인 거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네게 가져가려고 주문한 양념게장이 잘 출발했는지 확인했는데도 저녁은 오지 않았다. 밤이 되어야 달력에서 오늘 날짜 위에 X 표시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너무 많은 음식이 부담된다는 네 말에, 가져가기로 한 음식의 절반을 덜어 내고 나니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숨죽이며 시간을 이겨내야 했다.


면회 전날...

아빠는 네가 좋아하는 평양냉면집에서 육수와 면을 포장해왔다. 버너를 쓸 수 없다는 면회실에서 어떻게 면을 끓일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전기포트를 가져가기로 했다. 물에서 건져 찬물에 헹구려면 체망도 있어야 했지.

"이래도 되나? 너무 오버 아니야?"라는 엄마의 말에 아빠는 당당히 얘기하더구나.

"아들 먹고 싶다는 거 챙겨주고 싶은 부모 마음인데 오버가 어딨어~"


입대 전 네가 자주 먹던 불족발 집에 주문전화를 걸었는데, 벌써 다 팔리고 없다고 하더라. 8시밖에 안된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어느새 맛집으로 소문이 났던 건지 야속하고, 좀 더 일찍 주문하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 배달 어플에서 평점이 높은 곳으로 주문을 하고 시원한 뒷베란다에 놓아두었다.


면회 당일...

다른 건 다 됐고 교촌치킨 허니콤보, 평양냉면, 불족발 그리고 엄마가 만든 깻잎전이 먹고 싶다고 했지. 아침 일찍 일어나 깻잎전을 부쳤다. 한참 부치고 있는데 이미 샤워를 마치고 멀끔하게 차려입은 뒤 진한 화장품 냄새를 풍기며 아빠가 옆에 와서 말하더라.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말이야, 계란말이가 그렇게 먹고 싶더라? 다른 계란 요리는 다 나오는데 말이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어."

듣고 보니 일리가 있더라. 단체급식에서 계란말이가 나오는 건 힘든 일일 테지... 당장 계란 6개를 풀고 당근과 파를 다져 넣어 정성껏 말았다. 수능 도시락으로 다져진 계란말이 솜씨를 뽐냈지.

아이스박스 문을 닫기 전 아빠의 주문이 또 들어왔다.

"우리 집 보리차 싸갈까? 가족들이 어디 여행 갔다 오면 우리 집 보리차부터 마셔야 집에 온 것 같다고 했잖아."

그 말도 일리가 있더라. 흔한 티백을 우려냈을 뿐인데도 우리 집 음식 중 최고로 인정받던 보리차.

냉장고에 있던 시원한 보리차를 보냉병에 담았다.


함안으로 들어가기 전, 진주에 들렀다.

그곳에서 네가 좋아하는 치킨을 포장했다. 거기서 멈추지 못하고 엄마 아빠는 폭주했다. 근처 마라탕 집에서 마라샹궈를 포장했다. 면회실 앞까지 갔다가 아무래도 아쉬웠던 아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네가 좋아했던 음식들이 다시 하나하나 떠올랐기 때문이다.


면회실에서...

그저 빛...

면회실 저쪽에 혼자 앉아 우리를 기다리던 네 모습은 그저 빛이었다.

누군가는 아들을 만나면 울 거냐고 물었었지만, 우는 게 다 웬 말이니. 우리는 빛을 보고 울지 않잖아. 그저 황홀할 뿐이지. 꿈일지 생시 일지 모를 그 상황에서 그저 너를 안아보고 배고프다는 널 위해 상을 차릴 뿐이었다.

끓여낸 면위에 얼음 가득한 육수를 부어 냉면을 만들고, 계란말이와 깻잎전이 들어있는 찬합을 펼쳐놓고, 준비해 간 모든 음식을 차려놓은 후에야 네 앞에 앉아 찬찬히 네 얼굴을 보았단다. 아빠와 나란히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너와 그런 너를 꿀 뚝뚝 떨어지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아빠가 보이더라.

'피... 자기 혼자 아들이랑 앉아서 저렇게 얘기 나누는 거야? 난 밥 차리느라 이제야 아들 얼굴 보는데? 집에서도 자기 혼자 아들 만나러 가는 사람처럼 굴더니...'

어찌나 아빠한테 샘이 나던지...


"이 보냉병에 뭐 들었게~~ 맞혀봐~"라는 엄마 아빠의 물음에 넌 잠시 고민한 뒤 답했지.

"보리차? 진짜 보리차야? 대박!"

그랬다. 엄마가 준비해 간 깻잎전과 허니콤보치킨도 잘 먹었지만 네가 가장 맛있게 먹던 건 아빠가 싸가자던 계란말이와 보리차였단다.

어쩌면 너를 더 깊이 사랑하고 헤아린 사람은 엄마가 아닌 아빠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질투가 나더라. 난 엄마니까 누구보다도 널 잘 알고 누구보다도 널 더 사랑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빠의 사랑이 더 절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표현을 안 했을 뿐이지 아빠 눈에서도 아들 보고 싶어 진물이 났나 보구나... 싶더라.


네 옆을 연신 오가며 손주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할머니에게도 질투가 나더라.

차가워진 족발을 어떻게 데울 방법이 없는지 자꾸 묻는 것 하며, 이것도 먹어봐라 저것도 먹어 봐라 하면서 엄마인 나보다 더 나서서 너를 챙기는 모습이 못마땅했지.

외할머니는 네가 밥 먹는 모습, 통화하는 모습, 서있는 모습, 앉아있는 모습을 계속 사진에 담았다. 작은 체구로 요리조리 왔다 갔다 하면서 말이다.


가만히 앉아 너와, 네 아빠와, 네 외할머니를 번갈아 보니...

그 순간 가장 행복한 이는 나더라. 기뻐하는 사람 셋을 한꺼번에 바라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던게지.

그제야 하루 종일 제대로 된 끼니를 먹지 못했다는 게 생각나더라. 그런데도 배가 고프지 않던 하루였다.


면회 다음날...

아기같이 뽀얗던 얼굴에서 젖살은 빠지고 건강하게 그을린 네가 떠오른다.

5주 동안 받았던 특별훈련 기간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는 네 말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난다.

선임들이 하는 모바일 게임을 곁눈질로 알아두었다가 네 휴대폰에도 깔았다는 얘기도 생각난다. 선임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모든 걱정이 기우였음을 확인하던 어제였다.

넌 잘하고 있었고 여전히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첫 면회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오늘이 더 행복하다.


KakaoTalk_20211118_204543728.jpg 손주 사진 찍느라 정신없는 외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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